예민한 게 아니라 예민해진 것이다

지적 한마디에 흔들리던 마음에 대하여

by 해루아 healua

내가 자주 다니는 단골 미용실의 원장님은 아주 털털하고 직설적이다. 그 특유의 거침없는 화법 때문에, 사실 남편은 그 미용실 근처에도 가지 않는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남편은 웬만한 여자보다 찰랑거리는, 이른바 ‘전지현 엘라스틴’ 같은 머릿결을 타고났다. 하지만 본인에게는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워낙 직모라 펌을 해도 2주면 풀려버리고, 저녁이면 금세 기름이 지는 탓에 하루에 두 번씩 머리를 감아야 했다. 남편에게 머리카락은 자존심이자 가장 예민하게 신경 쓰는 부분이었다.


그런 남편이 나의 추천으로 그 미용실에 갔던 날, 돌아오는 길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원장님 말투 원래 그래? 다시는 안 갈래.”


원장님은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얼굴형이 긴 편이네요. 관리를 잘 못하시는 것 같은데 왜 앞머리 펌을 하셨어요?”


남편은 내게 속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머리를 잘 만질 줄 모르니 미용실을 가는 거지, 알면 가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조차 뜨악했다.

전문가의 조언이라기엔 지나치게 무례했고, 남편의 콤플렉스를 정면으로 건드린 화법이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와 성격이 정반대다. 기분이 상한다고 해서 매섭게 맞서 싸우기보다, 조용히 발길을 끊음으로써 자신의 선을 지키는 편이다. 그는 머리 모양이 아니라, 손님을 대하는 그 말투와 비언어적 소통에서 이미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8개월 만에 다시 내 차례가 왔다. 원장님은 반갑게 나를 맞이하더니, 머리를 자르는 도중 또다시 예의 그 ‘직구’를 날렸다.


“혹시, 고객님 알고 계세요?”


“뭐요?”


“고객님, 헤어라인이랑 정수리 쪽 모발에 힘이 없어요. 예전보다 머리가 많이 빠졌는데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벌써부터 다급한 말투로 원장님께 답했다.

“네? 정말요? 이유가 뭔데요?”


“노화죠. 저도 그래요. 서른 중후반 넘어가면 모발부터 노화가 오거든요.”


나는 무작정 기분이 상하기보다 덜컥 걱정부터 앞섰고, 그 자리에서 이유와 해결책을 묻느라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서니, 작은 지적 하나에 이토록 크게 반응하며 허둥댔던 내 모습이 생각이 났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그저 그렇군요.하고 시크하게 넘겼을 말이다. 반면 나는 왜 이토록 예민하게 반응하며 마음의 평정을 잃어버리는 걸까. 이 지독한 과잉 반응과 불안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펼쳐 든 책 『몽테뉴의 사유의 힘』에서, 마음을 꿰뚫는 듯한 긴 문장 하나가 가슴에 박혔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타고난 성격보다 매일의 반복이 더 무섭다.


미셸 드 몽테뉴는 인생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익숙함에 이끌려 사는 습관을 방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깨달았다. 내가 원래 예민한 성격을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 예민하게 반응하는 연습을 오래 해온 사람이었다. 누군가 내 외모나 건강의 결점을 건드리면 즉각적으로 비상벨을 울리고, 해결책을 찾아 전전긍긍하던 그 모든 과정은 지난 수십 년간 내가 반복해 온 ‘부정적 감정의 습관’이었다.


나는 나의 핵심 가치 5가지를 적어보았다. 유머, 아름다움, 성취, 만족감, 건강. 그중에서도 아름다움과 건강을 생존만큼이나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노화’와 ‘탈모’라는 단어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내 존재의 균형을 위협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뇌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과거의 회로를 가동한다. 71kg이던 시절, 거울 앞에서 느꼈던 그 지독한 열등감의 기억을 꺼내어 방패처럼 들이민다. 몸무게는 줄었지만, 그때 만들어진 불안의 회로는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성취에 집착하며 '안길동'처럼 뛰어다녔던 이유도, 이 익숙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무의식적인 반복이었는지 모른다.


무심코 튀어나온 당황스러운 말투, 자동으로 반응하는 감정, 의식 없이 반복하는 불안의 행동들. 몽테뉴의 말처럼 이 모든 것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그 ‘불안한 습관’을 방치해 왔던 셈이다.


오늘 무엇을 반복했는가. 그게 바로 우리의 미래다.


나는 익숙한 감정의 습관 뒤에 숨지 않기로 다시 결심했다. 누군가의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르고, 이것이 나를 끌고 가려는 ‘오래된 관성’은 아닌지 먼저 묻기로 했다. 의식적으로 시도하는 이 작은 ‘멈춤’이, 타인의 말에 휘둘리던 나를 다시 세워줄 시작이라 믿는다. 결국 삶을 바꾸는 건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질주하는 감정 앞에서 멈출 수 있는 힘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