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대신, 기대감으로 시작하는 하루

나를 지탱하는 세 번째 의식, 글쓰기

by 해루아 healua
우리는 자명종 소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벽의 무한한 기대감으로
깨어나는 법을 익혀야 한다.



오늘 새벽,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이 문장을 읽고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알람 소리에 떠밀려 억지로 몸을 일으키는 하루가 아니라, 무언가에 설레어 스스로 눈을 뜨는 삶.



과연 나는 그런 하루를 살고 있는가.


올해 처음으로 '미라클 나이트'를 지나 '미라클 모닝'에 성공했다.


새벽 다섯 시 반. 세상의 모든 소음이 잠든 고요한 시간에 노트북을 펼치자 마음이 낮게 가라앉는다.


숨 가쁘게 달려온 날들 사이에서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 정적이었다고, 새벽 공기가 내게 귀띔해 주는 듯하다. 어제와 다름없이 따뜻한 백차 한 잔을 곁에 두고, 비로소 글을 쓰기 시작한다.



느리게 살기 위해
나는 세 가지 의식을 반복한다.

첫 번째가
차를 우리며 몸을 데우는 시간이라면,

두 번째는
요가 매트 위에서 굳은 몸을 깨우는 시간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생각과 감정을 움직여
'나'라는 세계를 기록하는 글쓰기의 시간이다.



누군가는 묻는다. 글쓰기가 어떻게 느리게 사는 법이 될 수 있느냐고. 글을 쓰다 보면, 흩어져 있던 마음이 한 문장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요가가 몸의 근육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깨우듯, 글쓰기는 팽팽했던 생각들이 조금씩 풀리고 흩어졌던 마음이 다시 모인다.


제어할 수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하루 속에서 조급함과 불안이 발을 쑥 들이밀 때마다, 나는 문장을 쓰며 그 소란을 잠재운다.




사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무언가를 남기는 일을 사랑했다. 편지와 메모, 다이어리와 일기. 집 안 한구석에는 아직도 버리지 못한 여덟 권의 일기장이 훈장처럼 놓여 있다.


학창 시절엔 공부보다 필기하는 행위 자체에 더 몰입했을 정도니, 글을 쓰는 시간은 내게 가장 낯설면서도 가장 익숙한 안식처였다.



글을 쓰기 위해 하얀 화면 앞에 앉으면 시간은 어느덧 속도를 잊은 채 흐른다.


첫 문장을 떼지 못해 한참을 멈춰 서고, 적절한 단어를 찾기 위해 고민하다 보면 조급했던 마음은 어느새 자취를 감춘다. 생각은 넘치는데 문장은 인색하고, 마음은 자꾸 다른 곳으로 흩어진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냥 쓰는 것'뿐이다. 투박하더라도 일단 써 내려가다 보면 엉켰던 생각의 실타래가 조금씩 풀리며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퇴사 후 찾아온 공허함은 나를 다시 노트북 앞으로 불러들였다. 소속이 사라지자 정체성도 함께 흐려지는 기분이었다.


나를 다시 찾기 위해 시작한 글쓰기는 예상치 못한 변화를 가져왔다. 일상을 더 세밀하게 관찰하게 되었고, 사소한 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게 되었다. 시간을 들여 문장을 다듬는 고된 노동이 이상하게도 싫지 않았다.



글은 본질적으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빨리 쓰려 할수록 문장은 겉돌고, 오래 붙잡고 늘어질수록 비로소 내 마음에 가까운 진심이 나온다.


이 고귀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나는 가장 먼저 핸드폰을 멀리 둔다. 끊임없이 울리는 알림과 자극적인 정보들로부터 나를 격리시킨다. 고독할지언정 그 적막 속에서만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흘러가 버릴 마음을 문장이라는 매듭으로 묶어두는 일이며,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다.


책을 읽다 멈추고 문장 하나에 오래 머물 듯, 내 삶의 한 장면을 오래도록 응시한다.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의 '속도'다. 타인의 기준에 맞추느라 흐트러졌던 호흡이 글을 쓰는 동안 비로소 차분해진다.



글을 쓰면 내가 그 글을 닮아간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날카로운 감정을 정갈한 문장으로 다듬다 보면, 신기하게도 내 마음의 모난 구석이 함께 깎여 나간다.


문장의 결을 고르게 펴는 일은 결국 내 삶의 결을 다듬는 행위와 다르지 않았다. 숫자로 남는 자산은 언젠가 사라지겠지만, 내가 남긴 생각은 결국 나를 대신해 남는다.




차와 요가, 그리고 글쓰기.
모양은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같은 곳을 향한다.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고, 적응의 인내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그 끝이 늘 평온하다는 것. 처음엔 어색하고 지루할지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안개가 걷히듯 정돈된 나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조용히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 알람 소리에 등 떠밀리는 삶이 아니라, 내가 써 내려갈 문장에 대한 기대감으로 하루를 깨우기 위해서. 더 느리게, 그러나 더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나는 오늘도 나를 한 문장씩 써 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