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사라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흔들리면서도 멈추지 않는 삶에 대하여

by 해루아 healua
지금도 불안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할 것이다.

"네, 여전히 흔들리고 있습니다."라고.


글을 쓰고 마음을 다스리면, 언젠가 불안이 완전히 씻겨 나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마음은 날씨와 같다. 늘 맑을 수는 없고, 구름을 막을 수도 없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소나기를 멈출 수는 없지만, 그 비를 맞을지 잠시 처마 밑에 머물지는 결국 나의 몫이다.



나는 나를 완벽히 치료할 순 없어도, 매일 '치유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치료'가 통증의 완전한 소멸을 뜻한다면, '치유'는 상처를 안고도 오늘을 살아낼 힘을 얻는 과정에 가깝다. 내 안의 서투른 구석이 도드라지고 조급함이 울컥 치밀어 오를 때마다, 나는 그 감정을 가만히 응시하며 기록한다. 그러면 날 서 있던 감정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글 속에 포획되고, 날뛰던 마음의 소음은 비로소 정직한 문장이 되어 얌전해진다.



요즘은 또 다른 형태로 나의 심장을 가장 아프게 찌르는 말이 있다. 평범한 안부의 탈을 쓰고 찾아오는 무심한 다정함이다.



"요즘 뭐 해? 시험관은 잘 돼가?"

"괜찮아, 다들 그렇대. 다음번엔 잘될 거야."



여기에 의사 선생님의 건조한 격려도 한몫을 보탠다.

매일 수많은 난임 환자를 마주하며 마모된 것일까. 나에게는 간절한 소망이지만,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가끔 기계적인 위로가 묻어난다.



"이번에 됐어야 하는데, 아쉽네요. 괜찮아요.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분명 나를 위하는 말들인데, 예상치 못한 순간 날아와 꽂히는 질문과 대답들 앞에서 내 마음은 속절없이 서늘해진다. 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그 짧은 문장들이 닿는 순간 공들여 정돈해 두었던 마음의 결은 금세 엉망으로 흐트러지고 만다.



미처 방어할 틈도 없이 일상을 침범당한 기분. 그럴 때면 정성껏 펴놓았던 마음의 페이지 위로 지워지지 않는 굴곡이 새겨지고 만다.



사실 나의 진짜 결핍은 '난임' 그 자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단순히 남들처럼 '정상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는 조바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아이를 정말 좋아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내 곁의 남편을 깊이 사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이를 품에 안고, 그 아이의 맑은 눈망울 속에서 우리가 함께 통과해 온 시간을 발견하고 싶은 마음. 그것은 누군가에게 증명해 내야 할 인생의 숙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생의 소망이었다.



가끔은 서글픈 상상에 잠기기도 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우리가 너무 사이가 좋아서 삼신할머니가 시샘이라도 하시는 걸까?' 하는, 말도 안 되지만 절실한 물음들. 세상이 정한 적령기라는 직선의 궤도에서 이탈할 때마다 나는 낙오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고, 그럴수록 스스로를 자책이라는 좁은 틀 안에 구겨 넣으며 자꾸만 초라해지곤 했던 것이다.




얼마 전, 사순 시기를 맞아 피하고 싶었던 고해성사를 했다. 신부님 앞에서의 고백은 사실 고해라기보다 원망에 가까웠다.



"신부님, 저는 아이를 갖는 일에서만큼은 꼴찌인 것 같아요. 제 주변 지인들 모두 가뿐히 넘어가는 그 당연한 문턱이 왜 제게만 이토록 높은 걸까요.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서 자꾸만 미끄러지는 제가 너무 미워 미사도 피하고 싶고, 자꾸만 원망이 듭니다."



나의 날 선 원망을 묵묵히 들어주시던 신부님은 보속으로 가정을 위한 기도 세 번을 일러주셨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나의 세례명을 물으셨다.


"가브리엘라입니다."



작게 읊조린 내 이름 뒤로 신부님의 목소리가 다정하게 얹혔다.


"가브리엘라 자매님, 잘 오셨어요. 제가 자매님과 그 가정을 위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정상'의 속도가 아닐지라도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며 이 긴 기다림의 시간을 함께 짊어져 주겠다는 약속이 그토록 큰 위로가 될 줄은 몰랐다. 고해소 밖으로 나왔을 때, 여전히 내 상황은 바뀐 것이 없었지만 나를 짓누르던 공기의 무게만큼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



삶은 계속해서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지만, 타인이 정한 궤도에 나를 맞추려 애쓰는 대신, 내 아픔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다.



내 인생은 단 한 번에 '패스'하는 법이 없었다. 남들이 직선으로 뻗은 고속도로를 시원하게 달릴 때, 나는 늘 구불구불한 국도 위에서 길이 뚝 끊겨버린 듯한 막막함을 견뎌야 했다. 길을 잃거나 멈춰 서는 것이 일상이었고, 아이를 기다리는 이 길조차 내게는 유독 버겁고 고단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글을 쓰며 비로소 나를 알아간다. 화면 위에 꾹꾹 눌러쓴 문장들은 더 이상 비루한 낙오자의 기록이 아니다. 인생의 정답을 맞히지 못해 불안해하던 나는, 질문을 바꿔보았다. 세상의 기준에 부합하는 완벽한 삶이 아니라, 조금 느리고 구부러지더라도 내 속도로 써 내려가는 삶을 살겠노라고.



불완전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기록하고 사유하며, 나란히 걷는 법을 배울 뿐이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지만, 이제는 그 흔들림조차 내 문장의 리듬이 될 수 있음을 안다. ‘정상’이라는 틀에 나를 가두지 않고, 불안이라는 날씨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나 자신에게, 그리고 같은 길을 걷는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단 하나의 응답이다.


흔들림은 나를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쓰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