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마라톤에서 배운 삶과 속도에 대하여
5월 4일,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나의 첫 마라톤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전에, 고백할 것이 있다.
사실 나는 아이를 갖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
작년부터 간절히 바라왔지만, 마음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혼 이후 맞이한 크고 작은 일들은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마음은 조금씩 무너졌다.
커리어를 내려놓으며 자신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아이 역시 쉽게 찾아오지 않아, 누워도 좀처럼 잠들 수 없는 밤들은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렇게 여러 고비를 지나며, 나는 '달리기'라는 새로운 길에서 진짜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지 11개월.
그 시간엔 남몰래 흘린 땀과 눈물이 엉켜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 여정을, 남편과 함께 걷게 되었다.
남편은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기 5년 전부터 달리기를 즐기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를 만난 이후엔 테니스와 헬스 같은 다른 운동에 집중하며, 달리기와는 점점 멀어졌다.
남편의 낡은 운동화는 어느새 자취를 감췄고, 달리기라는 일상도 조용히 접어두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숨이 턱 막히는 2km 러닝 인증샷을 보여주자 남편은 그저 조용히 웃었다.
이렇게까지 오래, 깊게 달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는 나를 지켜보며, 남편은 다시 운동화 끈을 조용히 묶기 시작했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와 함께 길을 나섰고, 내가 힘이 부칠 땐 아무 말 없이 페이스메이커가 되어
옆에서 함께 뛰어주었다.
그 순간순간이 쌓여, 우리는 어느새 같은 리듬으로 숨을 쉬고, 같은 길 위에서 함께 나아가고 있었다.
4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오열했다.
또다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앞에서 무너졌다.
그때, 남편은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갓 태어난 아이처럼 남편 품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며칠 후, 남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 함께 10km 마라톤 나가볼까?”
그 순간, 눈물샘이 또 한 번 터졌다.
사실 달리기는 내게 마음 수련과 같았다. 스스로와 싸우고, 포기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그 싸움에서 지고 싶지 않았다.
11개월 동안 달려온 내 인생의 시간들.
돌아보면 단 하나의 순간도 헛되지 않았다. 발걸음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가 있었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이렇게 달려본 적이 있었나?”
지금 이 순간, 이 여정이 바로 나의 삶이었다.
달리기를 통해 나는 습관을 만들었다.
받아들이기 힘든 것들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법, 그리고 간절히 바라는 것을 간절히 바라는 법도 배웠다.
기록 욕심도 생겼다.
'10km 1시간 이내 완주'
처음엔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대회 당일,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그 흐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앞으로,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결과는 53분대, 페이스 5분 25초.
결승선을 밟는 순간,
그동안의 과정이 파도처럼 밀려와 벅찬 감동이 가슴을 가득 채웠다.
남편은 그런 나를 꼭 안아주었다.
“대단해. 쉬지 않고, 끝까지 달렸어.”
마라톤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각자의 속도는 모두 다르다는 것.
3km, 5km에서 멈추는 사람도 있었고, 10km 완주를 40분 만에 주파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내가 될 수 없었고, 나 역시 그들이 될 수 없었다.
결국 중요한 건,
내 속도로,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마라톤은 내게 진짜 '나의 리듬'을 되찾게 해 주었다.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그저 내 호흡과 발걸음에 집중하는 시간. 달리는 동안은 나를 의심하지 않았다.
멈추고 싶은 순간마다 '조금 느려도 괜찮아.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였다.
혼자였다면 울컥했을 이 여정을, 남편과 함께였기에 끝까지 웃으며 달릴 수 있었다.
결승전을 넘은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은 이미 같은 방향을 향해 걷고 있었다.
끝까지 달려온 우리가, 참 좋았다.
이 리듬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계속 함께 달릴 수 있기를.
우리의 마라톤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달리는 중이다. 함께, 같은 리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