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소소한 희생
이제는 나갈 때 가디건을 챙겨야겠다. 해가 저무니 날이 제법 차다. 오랜만에 중앙로에 갔다. 보통 중앙로에 갈 때는 아이의 운동화를 사러 간다. 오늘은 특별히 남편을 위해 갔다.
남편은 정말 뭐를 안 사는 사람이다. 신발도 너덜 해질 때까지 신고 옷도 터질 때까지 입는다. 결혼 전에는 말끔하게 셔츠에 면바지 입고 다니던 사람이 어느새 아저씨가 되었다. 남편이 물욕이 없는 스타일은 아니다. 본인 말로는 가정경제를 생각해서 안 사는 것이고 자신은 본판이 멋진 사람이라 뭘 걸쳐도 태가 난다고 한다. 이건 무슨 자신감인지.
아무튼 남편의 마땅한 옷이 없다. 생일 때마다 옷을 사주긴 했으나, 생각해 보니 올해 생일엔 아무것도 못 해줬다. 가벼우면서 추위도 견딜 수 있는 패딩 하나를 사기로 했다. 안 사겠다고 버티던 사람이 매장에 들어가 몇 번이고 입어본다.
“유준아, 아빠한테 어떤 색이 잘 어울려? “
신난 게 티가 난다. 그러면서 가격표도 힐끔 쳐다본다. 패딩이니 얇아도 가격이 싸지는 않다. 이럴 땐 등을 떠밀어야 한다. 하나를 사도 꼭 입어보고 신어보고 고르고 고르는 남편 덕분에 나중에 우리는 다리가 아팠다.
나는 뭘 사면 가격표를 바로 떼버린다. 그건 곧 죽어도 교환이나 환불은 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남편은 택을 정말 입을 때까지 떼는 법이 없다. 기간 내에 교환이던 환불이던 여지를 남겨 놓겠다는 말이다.
집에 와서 이것저것 할 일을 하다 침대 위를 보니 아까 산 패딩이 택을 달고 누워있다. 또 고민하려나. 몰래 떼버릴까 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아마 오늘 산 패딩은 닳고 닳도록 입어 지구 환경에는 큰 해을 끼치지 않을 거다.
물욕이 있어도 드러내지 못하고 스크루지 행세를 해야만 하는 가장이여~ 새것도 좀 편하게 입고 쓰고 하기를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