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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미 Nov 23. 2024

외출

오르막이 진리.



‘엄마 낮 외출’

한 달 전부터 달력에 체크를 해뒀다. 일요일에 혼자 외출을 하는 건 남편에게 미안한 일이다. 첫째만 키울 때는 주말에 나가는 일이 그다지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가끔 모임 친구들과 여자들끼리 일박도 즐기곤 했다.


어느 날, 나는 둘째를 갖겠다고 선언을 했다. 한 명만 낳아 귀하게 잘 키우자 여겼건만 무슨 바람이 불어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 모를 일이다. 첫째는 무충하게 임신 3개월이 되어야 알았지만, 둘째는 완벽한 계획하에 잉태가 이루어졌다.


자유로웠던 유부녀가 마흔이 다 되어 출산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일이었다. 내 안의 환경이 바뀌자 주변 환경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금에 와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은 ‘개인적인 외출’이 사치스럽고 누군가에게 미안해졌다는 것이다. 그 누군가는 물론 남편이다. 남편은 내가 어딜 가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다. 아무리 늦게 들어와도 전화 한 통 없이 잠도 잘 잔다.

하지만 이제는 나가는 나를 붙잡고 아이 한 명이라도 데려가라고 아우성이다.

달력에 미리 ‘엄마 외출’을 기재한 건 남편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남편: 여자들끼리 어디 갈 거?

나: 오랜만에 오름 갈 거. 서우봉.

남편: 유준아, 엄마 서우봉 간대. 같이 가서 운동해.

유준: 나도 갈래. 나도 나도.



치근덕대는 ‘이’씨 남자들을 떼어내고 친구들과 오름에 올랐다. 그중 한 친구는 아직 미혼이다. 여전히 학생 같은 친구는 오름을 가벼이 올랐다. 오르막길에 오를수록 내 시선은 땅과 가까워졌다. 바닷바람이 아무렇게 내 등을 밀어주었다. 꼭 내 인생을 걸어가는 듯했다. 가파르고 가파르다. 서우봉이 이렇게 가팔랐었나 싶다. 한순간 뒤를 돌아봤을 때 경이로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 멀리 하늘과 땅이 맞닿은 풍경에 사소한 근심들이 흩어지는 듯했다.

함덕 바다 바람이 내 뼛속 사이사이로 스며들었다. 내복을 입고 올 걸 후회도 했다. 정상보다, 올라가다 문득 뒤돌아본 풍경이 가장 멋있다. 막상 정상에 가니 내 등을 따라오던 그 풍경이 아련해졌다.


친구는 인생 뭐 있냐며 오름이 인생이라 말하며 웃었다. 내리막은 더 쉬울 거라며.

하지만 나는 내려갈 때는 재미가 없었다. 경사진 비탈길을 내려갈 때, 내 다리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경사에 의지하며 다리는 끌려갈 뿐이었다.



오르막길 뒤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웠듯, 내 인생도 그러하길 바란다. 정상을 찍고 내리막길 경사에 기대어 와르르 내려가는 것보다, 올라가는 이 길을 즐기고 싶다. 하늘이 날 지켜봐 주고 바람이 날 밀어주니 내가 할 것은 꾸준히 오르는 것이다.

목적지가 어딘지 잘은 모르겠다. 그저 하루를 즐겁고 열심히 살고 싶다.

바람 싸대기 덕분에 우리는 서우봉 아래 핫플 커피숍에서 정말 죽여주는 라테를 마실 수 있었다.


오르막길 시선.

올라가다 뒤돌아봤을 때.

서우봉 정상.

죽여주는 라테.

보너스.^^





떼어놓고 온 ‘이’씨 남자들을

결국 함덕해수욕장 주차장에서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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