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이미 아이들은 한낮이다. 나는 눈도 못 뜨는데 이 젊은것(?)들은 에너지가 쌩쌩이다. 다행히도 엄마를 애타게 찾지 않으니 엄마는 등을 둥글게 말고 누워있다.
- 미미야, 시원이 좀 봐. 소파에 올라가맨.
- 으응...
입만 움직일 뿐 몸은 그대로다. 남편이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냄새를 보아하니 오늘 아침은 서양식이 분명하다.
남편이 화를 내기 직전에야 나는 흐물거리며 방을 나간다. 아침 몸무게를 체크하고 화장실에 간다.
- 유준아, 잘 잤어?
- 응~엄마, 아빠가 오늘 아침은 토스트래.
쫄래쫄래 돌아다니는 둘째를 들어 안는다. 토스트 냄새 사이로 아기향이 스며든다.
토스트를 먹으며 오전 외출은 어디로 갈지 이야기한다. 오전 외출은 가까운 곳으로 가야 한다. 점심시간에 첫째의 방문 선생님이 오시고, 둘째 낮잠도 재워야 한다.
- 일단 나가자.
10시가 넘어가면 둘째는 나가고 싶어 현관 앞을 초토화시킨다. 우리는 목적지도 모른 채 간단히 짐을 꾸려 집을 나선다.
- 오랜만에 봉개 LH 가볼까?
- 좋아! 아빠, 나 오랜만에 봉개 가볼래. 우리 살았던 집도 들어가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꾸미고 사나 궁금해.
이젠 남의 집이니 들어갈 수 없다 몇 번 말해도 아이는 눈을 반짝인다. 지금 집에서 봉개까지는 차로 15분가량 걸린다. 이마트 가는 시간과 맞먹는데, 봉개로 가는 길은 멀리 촌으로 나들이를 가는 기분이다.
낯익은 도로와 건물을 지나친다. 아라동에서 봉개동으로 가는 그 길이 애잔하게 다가온다. 처음 신혼부부 청약으로 살게 된 우리의 임대 아파트. 입주가 확정되어 혼자방문 했을 때 동영상을 찍어 몇 번이고 봤다. 심지어 영상을 시아버지, 시어머니께도 전송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참 순수했다.
대단지 아파트가 양대산맥으로 위엄 있게 올라오고 학생수가 가장 많은 초등학교가 있는, 내게는 적어도 커다란 동네.
지금은 그 동네에서 봉개동 예전 집처럼 아담한 공부방을 운영 중이다. 봉개동으로 가는 길에 긴장이 한 움큼 풀리는 듯했다. 이 느낌은 마치 서울로 상경한 회사원이 휴가를 받아 고향을 찾는 느낌이랄까.
이제는 이사 온 지도 꽤 되어 아라동이 우리 동네구나 싶었는데, 나도 모르게 긴장을 하고 살았나 보다. 신혼을 보냈던 봉개 아파트 단지를 거닐며 미간 주름이 눈웃음으로 바뀌었고 마음이 편안했다.
아이가 다녔던 놀이터 앞 어린이집도, 화단에 무성한 나무들도 그대로다. 1층 비밀 엘리베이터도, 그 옆에 캣할머니가 키우는 고양이도 여전히 그 집 실외기를 지키고 있었다. 놀이터에서 바라본 7층 옛날 집에도 실외기가 보인다. 누군가 들어와 살고 있구나. 아이의 말처럼 어떻게 꾸미고 사는지 궁금했다.
다시 우리 동네로 돌아오는 길. 이렇게 봉개에서 아라동으로 가는 동안 아이가 한 명 더 생겼고, 나이 앞자리가 올라갔다. 직업이 바뀌었고 빚은 좀 더 늘어났다.
그땐 가족 빼고 잃을 게 별로 없었지만,
지금은 잃을 게 제법 많아진 듯하다.
시야에 커다란 우리 동네가 보인다.
꿋꿋하고 재미있게 앞으로도
잘 살아내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