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과즐

by 김미미


나는 늘 태흥리 할머니(외할머니)를 그리워했다. 나를 낳아준 엄마, 무섭지만 나를 존재하게 한 아빠와 함께 살면서도 태흥리 할머니가 많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태흥리 할머니를 자주 뵐 수 없었다. 아빠는 외가댁을 싫어했다. 할머니나 이모 앞에서 행패를 부린 적은 없지만 엄마를 항해 외가댁을 원망하고 욕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엄마에게라도 할머니가 보고 싶다는 말을 못 꺼냈다. 방학이 되면 날 할머니에게 보내 주더니, 어느 방학부터는 할머니 댁에 보내주지 않았다. 내가 3학년에 시장 할머니(친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아마 그쯤부터 인걸로 기억한다. 시장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로 아빠는 더 포악해져 예민함의 끝을 달렸다. 나는 아프지 않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상을 살아야 했다. 그 긴장감은 태흥리 할머니가 보고 싶은 마음을 저 깊숙이 꾹 숨겨 놓았고, 나도 좀 컸는지 내게 주어진 가족과 삶에 순응해 갔다.




엄마는 혼자서 아주 가끔, 한 번씩 태흥리 제사에 갔다. 아마 외할아버지 제사였을 거다. 그럴 때면 엄마가 영영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이 앞섰다. 캄캄해져서야 돌아온 엄마 손에 들린 검정 비닐에는 초코파이, 카스텔라, 과즐이 있었다. 우리 집 제사에는 과즐이나 초코파이, 빵 종류는 올리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는, 역시 나의 태흥리 할머니가 차리는 제사상은 달콤하고 따뜻하다고 느꼈다. 엄마가 가져온 과즐을 손 위에 가만히 올려두고 아껴먹었다. 이에 쩍쩍 붙는 엿기름이 내 입에 오래 남았다.



나는 많이 컸고 태흥리 할머니는 건강이 안 좋아져 서귀포 이모 댁으로 이사를 오셨다. 우리 남매는 추석과 설에는 꼭 태흥리 할머니에게 인사를 갔다. 아빠도 그즈음엔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태흥리 할머니의 긴 머리는 더벅머리 커트가 되어 있었고 총명하던 눈빛이 흐릿해지셨다. 과즐은 그렇게 잊혀갔다.



서른이 지난 어느 추운 날, 하나로 마트에서 과즐을 발견했다. 이에 쩍쩍 붙는 그 시절 그 맛 그대로였다. 그 후로 나는 과즐을 종종 사다 먹는다. 과즐에서는 할머니 냄새가 난다. 나만 느낄 수 있는 태흥리 할머니 냄새. 이제는 맡을 수 없는 그리운 향.


늦은 저녁, 아이와 과즐을 나눠 먹으며 할머니 생각이 났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외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