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보는 사람들
번역사는 글의 얼개를 이해하고, 핵심을 꿰뚫어 보는데 특화된 사람들이다. 우리는 효과적인 의미 전달을 위해 글 전체의 흐름을 읽고, 각 문단의 역할을 파악한 뒤 문장과 단어를 재배치한다. 같은 의미를 지닌 말을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지가 번역사의 역량을 좌우한다.
그러나 번역사의 일이라는 것은 결국, 한 언어와 다른 언어의 무게를 재어 등가를 지닌 단어를 선별해서 문장을 자아내는 작업의 지난한 반복이다. 평형을 맞추려는 시도는 줄곧 처참하게 실패하지만, 끝이 보일 때까지 한 문장에서 다음 문장으로 그저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필연적으로, 문장과 문장 사이의 허술한 틈을 잘 찾게 된다.
김중혁 작가의 산문집 『무엇이든 쓰게 된다』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내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도 무척 즐거운 자리가 하나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에서 내 소설을 텍스트 삼아 번역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들을 직접 만나는 자리인데, 초청을 받으면 무조건 간다. 처음에는 망설였는데, 이제는 재미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무조건 간다. 번역원 학생들과 함께 소설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대체로 소소하고 사소한 질문들이다. “작품 속에는 칼이라고만 적혀 있는데 식칼인가요, 아니면 커터 같은 건가요?” 라든가 “슈퍼마켓과 건물은 몇 미터 떨어져 있나요?” 같은 질문을 받으면 깜짝 놀라게 되고, 웃음이 나면서 즐거워진다. “소설에 나오는 시계는 구체적인 모델이 있나요?” “혹시 그려둔 시계가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그동안 쌓아두었던 자료를 뒤지면서 답을 하게 된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질문도 많다. 소설을 쓰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세부사항에 대해 물어볼 때면 식은땀이 난다. 그 자리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소설을 쓸 때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설정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빈구석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번역자들은 기가 막히게 그런 부분들을 찾아낸다. 번역을 하다 보면 그런 부분이 잘 보이는 모양이다.
크게 공감하며 읽었다. 그렇다. 우리는 쪼잔하고, 집요하고, 치사하기 이를데 없는 족속들이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원래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법이다(The devil is in the detail). 원문의 빈구석을 해결하지 않고 정확한 번역을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문장을 번역한다고 하자. 코웨이 사보에서 발췌했다.
언제부턴가 대한민국에서 정수기와 공기청정기가 놓여있는 거실은 익숙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건강을 행복의 본질로 여기는 고객의 사랑에 힘입어 코웨이는 1989년 창립 이래 도전정신으로 성장을 거듭해왔습니다.
당신이 번역사라면 이 문장을 보고 가장 먼저 어떤 의문이 들까?
나의 경우, "일반적인 가정집에서 정수기를 거실에 두나? 정수기는 부엌, 공기청정기는 거실이지."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안다. 치졸한 거.
Air and water purifiers became an integral part of an ordinary Korean household. Our customers cherish health as the essence of happiness. Your support has encouraged us to continue our progress and take up challenges since our establishment in 1989.
나의 타협안은 위와 같다. 당연히 정답은 없다. 다만, "대한민국에서"를 정말로 "in Korea"로 직역하거나, "고객의 사랑"을 "the love of our customers"로 직역하면, 원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에서 벗어나게 된다.
번역사는 숲과 나무를 함께 보는 사람들이다. 다만, 나무를 볼 때 옹이까지 집요하게 보는 사람들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