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vs 직장인
집단생활을 견디는 것이 늘 힘들었다. 규율에 따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타인과 부대끼며 정해진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이 늘 불편했다. 그래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 내게는 꼭 필요했다.
대학원을 졸업하자마자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했다. 드디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 회사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듬해에 취업을 했고, 한 번의 이직을 했다. 이제는 회사에 소속되어 일한 경력이 프리랜서로 일한 기간의 두 배쯤 된다.
연애를 거듭하면서 내가 견딜 수 있는 부분과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을 알아가며, 완벽하지는 않지만 나에게 맞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이상형을 찾아가듯, 약 1년의 전업 프리랜서 생활과 2년의 직장 생활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지속 가능하면서도 스스로를 해하지 않는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을지 그려보게 되었다.
프리랜서에게는 정해진 근무 시간이 없다. 기한에 맞춰 제대로 일을 끝내기만 하면,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오후 늦게 일을 시작하거나 밤새 일을 하고 낮에 잔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24시간 대기 상태가 된다. 자정에 일을 받아서 아침까지 끝내야 하는 경우가 있고, 금요일에 일을 받아서 월요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내가 시간의 고삐를 쥐지 않으면 시간이 나를 쥐고 흔든다.
프리랜서에게는 정해진 근무 장소가 없다. 눈곱을 매단 채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며칠째 같은 옷을 입고 집에서만 일을 하든,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서 일을 하든 제대로 일을 끝내기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더운 계절엔 추울 정도로 냉방이 잘 되고, 추운 계절엔 더울 정도로 난방이 잘 되는 카페에서, 여유롭고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맥북 스크린을 응시하다 날카롭게 타자를 치는 어느 차가운 도시 여자를 상상했는가?
첫째, 당신이 예닐곱 시간을 죽치고 앉아 있어도 면구스럽지 않은 카페를 찾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둘째, 그런 카페를 찾았다 하더라도, 배터리가 닳을 때를 대비해 언제든 콘센트를 연결할 수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는 매우 어렵다. 화장실 이용이 불편하거나, 지나치게 사람이 많아도 문제다. 일을 하러 가기에 적합한 카페는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외에는 몇 군데 되지 않는다. ‘일하기 좋은 카페’, ‘공부하기 좋은 카페’가 검색어로 핫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프리랜서인데 국외로 여행 가서 일을 해도 되지 않을까? 일단, 의뢰인과 호흡을 맞춰서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하는 일이나 몇 시간 혹은 며칠 단위의 단기 프로젝트를 들고 여행을 떠나기는 쉽지 않다. 당신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사이에 마감이 끝날 수 있다. 게다가, 일을 해서 버는 돈보다 숙소를 예약하고 비행기 값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
진정으로 시간과 공간에서 자유롭기란 키 크고 잘생겼는데 집안 좋고 성격까지 좋은 남자가 나에게 첫눈에 반하기 만큼이나 어렵다.
무엇보다 프리랜서는 주변의 걱정을 산다. 아무리 대범한 부모님이라도 매일 혼자 일하며 줄곧 집에만 있는 딸을 염려하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를 아끼는 주변의 지인들 역시 한 번은 직장 생활을 해봐야 하지 않겠냐고 조언했다.
그즈음 내가 까탈스러워지고 있다는 생각은 했다. 싫은 걸 피해서 도망만 다니다가는 더 이상 도망갈 구석조차 없어지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취업을 결정했다.
정부 소속의 영어 통번역사는 말로는 근사한 “전문” 계약직이지만, 가장 정보가 필요한데 가장 늦게 정보를 얻게 되는 주변자로 전락하기 쉬운 위치다. 먼저 나서서 실무에 관심을 기울이고 예민하게 촉각을 세우지 않으면, 잊히고 배제되기 일수다. 담당자를 귀찮게 하는 한이 있어도 끊임없이 묻고 점검하면서 내가 언제쯤 필요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사전에 예측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모른 채로 중요한 자리에 불려 가거나, 어제까지는 할 일이 없어서 빈둥대다 오늘부터는 갑자기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 십상이다.
다만, 사람 때문에 힘든 일이 많지만, 사람 덕분에 좋은 일도 생기고, 수입이 안정적이면서,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평일 9시에서 6시까지 근무 시간이 보장되므로 나머지 시간은 오롯이 내 것으로 쓸 수 있다.
바라건대는, 서울의 한적한 동네에 독립해서 살면서 평일 9시부터 6시 외에는 일을 받지 않고, 호흡이 긴 장기 프로젝트를 맡아서 때로는 여행을 다니기도 하는 프리랜서 번역사가 되고 싶다.
그래서 회사에 다닌다. 서울에서 혼자 살 수 있는 집을 마련할 정도의 전세 보증금, 몇 개월 쉰다 해도 당장은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비상금, 장기 프로젝트 내지는 출판 번역을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효과적인 방편으로.
한편으로는, 공익을 실현하려는 사람들 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업무를 지원하면서, 지금까지 살면서 받았던 크고 작은 도움과 혜택을 되갚는 기분을 느낀다. 되도록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서 내 몫을 다하면서 가능하다면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해지면 결과적으로 내가 행복해지는 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이런 연유로 적어도 5년은 버텨보자. 마음을 다졌다. 언제 결심이 흐트러져서 에라, 모르겠어, 다 필요 없어, 나에겐 자유가 필요해, 박차고 나올지는 스스로도 모르겠지만, 아직은 직장에 다녀야 하는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