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다친다.
온 힘을 다해 애쓰지만 세상은 좀처럼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예상치 못한 사건이 연이어 벌어지고, 간신히 일어섰다 싶으면 또다시 바닥으로 내던져진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사랑했던 사람마저 등을 돌린다. 화면 속 그는 점점 지쳐 보이고, 이제 정말 끝난 것만 같다.
그때, 옆자리에서 훌쩍이는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저 남자는 저렇게 죽는 거야?”
“아니야. 다시 일어날 거야.”
“아빠가 어떻게 알아?”
“딸, 이 영화는 해피엔딩이거든.”
아이는 눈물을 닦고 다시 스크린을 바라본다. 조금 전까지 절망 속에 있던 주인공을 향해 마음을 다해 응원한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대부분의 영화는 마지막에 주인공이 일어선다는 것을. 수없이 넘어져도, 거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도, 결국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빛을 마주한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중간의 고통을 견딘다. 그 장면이 끝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인생도 어쩌면 하나의 영화가 아닐까. 지금 우리가 겪는 실패와 상실, 배신과 이별은 이야기의 중간 장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한가운데 서 있으면서, 마치 이것이 결말인 것처럼 절망한다. 하지만 아직 엔딩 크레딧은 올라가지 않았다.
인생에도 분명 끝이 있다. 누구에게나 결말은 온다. 그리고 나는 믿고 싶다. 그 결말은 결국 해피엔딩일 거라고. 우리가 흘린 눈물과 견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해피엔딩을 믿는다는 것은 현실을 외면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고통을 정직하게 마주하면서도, 그 너머를 바라보는 일이다. 넘어졌다고 해서 이야기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배신당했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이 떠났다고 해서 다시는 사랑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해피엔딩을 믿는 아이처럼, 우리는 아직 끝을 보지 못했음에도 주인공의 회복을 믿는다. 하지만 정작 우리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믿음이 약할 때가 있다.
오늘이 힘들다면, 그것은 아직 중간 장면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가장 깊은 절망을 겪는 순간이야말로, 반전을 준비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나를 응원하기로 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라고.
그 믿음 하나로, 오늘이라는 장면을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