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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ail of Argo

기억 속의 기억

by Argo

"00씨는 책 속의 내용을 정말 잘 기억하는 거 같아요. 저는 그렇게 못하는데 정말 신기하네요."

지난주 상담시간에 상담선생님께서 내게 한 말이다. 선생님이 알려주시기 전엔 몰랐던 나의 장점이랄까.




나는 기억력이 남들보다 유달리 좋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금 더 좋은 정도?

특출나지 않은 기억력이 선생님의 눈에는 대단하게 보인 이유는 '반복'하는 습관에 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좋아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반복하는 습관이 있었다. 아직도 기억하는 <아기 돼지 삼형제>는 수백, 수천번을 읽었는데 글을 모를 때는 엄마의 목이 쉴 때까지 읽어달라고 했고 나중에는 내가 직접 책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었다.


책이든 영화든 내가 재밌다고 하는 건 기본적으로 3번 이상 봤다는 거다. 내가 인생 영화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굿윌헌팅>, <파인딩 포레스터>의 경우 최소 30번 이상 봤고 못해도 일년에 2~3번은 다시 본다.

특히 책의 경우 중요하거나 의미있는 문구를 보면 노트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다. 그런 노트가 꽤나 많은데, 요즘도 내가 사랑한 문장들을 필사하는 노트가 따로 있다. 커버 사진에 나오는 반 고흐의 그림이 그려진 노트가 그것이다.


얼마 전, 예전에 쓴 글들을 정리하다가 2013년 다이어리 한 쪽에 적힌 메모를 발견했다. 2013년 1월 9일에 쓴 건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죽지 않는다.

포기하지 않는다.

의미를 찾는다."


과거는 기억 속에 존재하며, 그 기억은 불완전하기에 우리는 기억의 퍼즐을 맞추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때문에 퍼즐들을 올바르게 배열하는데 도움을 줄 도구들이 필요하다. 나의 경우에는 이런 도구가 '글'이다. 매일은 아니지만 일기를 꾸준히 써왔고, 각종 노트와 메모에 시나 수필, 소설 등 여러 형태의 글들이 그때의 내 마음과 생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에 글은 내게 기억을 보충해주는 소중한 존재다.


조울증 이후에서야 내게 자살 충동이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기록에 의하면 내게 자살은 보다 더 친숙한 것이었다. 확증된 건 아니지만 2015년에 조울증 진단을 받기 전, 나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의심되는 사건과 시기들이 여러 번 있었다. 아마 저 글을 썼던 2013년 1월 9일은 우울증이 심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이 본격적으로 발병하기 전에 일정 조짐을 보인다. 나의 경우 명확하지는 않지만 우울증과 정상 범위 혹은 경조증 상태를 왔다갔다 하는 주기가 있었다. 적어도 1년에 1~2번 정도는 우울증으로 의심할 수 있는 명확한 증상이 있었고-지금은 기억나지는 않지만 기록에 의하면-자살 사고도 존재했다.



'나'라는 존재는 과거 사건들의 총합이자 그것들의 연결이며, 동시에 단순한 연결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연결로 인해 확장되고 증폭된 그 무언가다. 마치 다양한 화합물이 뒤섞여 온갖 화학작용을 일으키는 것처럼.


아니 에르노는 그의 소설 <부끄러움>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한 사건 후에 일어난 사건은 앞선 사건의 그늘 아래서 체험되는 것이다. 사건의 연속이 아무 의미도 없다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는가." 라고.

아마 내 생의 경험 중에는 서로 독립적으로 떼어 놓고 봤을 때 그리 심각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유발하지 않을 만한 일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건들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서로 이어지고 그것이 누적되면서 고통의 크기를 불려나간다. 작은 눈덩이를 굴리다보면 어느새 커져서 묵직해지듯이.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요즘,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사건 사이의 연관성과 그것이 주는 의미를 종종 탐색하곤 한다. 이런 과정은 유쾌하지 않을 뿐더러 대게 고통스럽다. 하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나는 현재의 '나'가 어떤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고 내가 지금까지 고통스러워 하는 사건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숙고해 볼 수 있다.



얼마 전, 엄마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우울의 시기를 한 번 보내고 나면 더 단단해지는 것 같다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 것 같다고.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다. 2년 넘게 심각한 우울증에서 회복과 악화를 반복하다 겨우 회복했을 때, 나는 그 전과 확연히 달라졌으니까. 자기 주장을 명확히 하고 나를 돌보며 내 삶에 대한 확고한 태도가 생겼다.


니체가 그랬던가. 나를 파괴하지 않는 고통은 나를 강하게 해준다고. 또 다시 찾아온 우울의 시간 속에서 내가 잘 견뎌낼 수 있기를, 그래서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삶을 포기하지 않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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