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이걸 취미라고 할 수 있나?
얼마 전부터 나에게는 취미가 생겼다. 이름하야 담맥하기, 담배와 함께 맥주를 즐기는 거다.
저녁을 먹고 어느 정도 소화가 되면 맥주 한 캔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대게 이 때가 밤 11시가 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인적이 드문 집 근처가 더 적막하다. 나는 한 손에는 담배를 다른 손에는 맥주를 들고 이 적막함 속을 거닌다. oasis의 cigarettes and alcohol이라는 노래처럼, 이 순간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이 두 가지뿐.
20대 초, 나는 술을 진탕 먹기도 하고 일상 생활에서 습관적으로 마시기도 했다. 보통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러 사람들과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마시는 것과 달리 나는 혼자 혹은 되도록이면 적은 사람들과 마시는 걸 선호했다. 그래서 혼자 살던 그 당시의 내 집에는 항상 보드카 병들이 늘 있었고 토닉 워터를 비롯해 여러가지 음료수가 구비되어 있었다.
술을 마시다가 배불러서 술을 더 이상 마실 수 없는데 별로 안 취한 경우나 술을 조금만 마시고 취기를 느끼고 싶을 때 담배를 폈다. 그러면 혈관 속에 잠들어 있던 취기가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한다. 맥박에 맞춰,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빠르게 뛰는 취기를 느끼고 있노라면 왠지 마음이 뿌듯했다. 그냥 기분이 좋다는 표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느낌. 어쩌면 안정감이나 편안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예전처럼 술을 마시지 못한다. 몇 년간의 금주의 영향으로 이전처럼 못마시기도 하고 조울증 때문에도 그렇다. 낮은 도수 - 5% 이하 - 의 맥주만 마시고 의식적으로 높은 도수의 술은 피한다. 혹여라도 마시고 다시 거기에 푹 빠져버릴까봐. 그렇지만 마트가서 술이 진열되어 있는 곳을 지날 때면 한참을 서성거리기도 한다. 내가 좋아했던 앱솔루트 병을 애타게(?) 쳐다보면서.
담배, 그리고 맥주와 함께하는 산책을 잠깐 즐기고 집으로 돌아와 잠깐 꺼두었던 모니터를 다시 켠다. 어떻게 보면 맥주와 담배는 글을 쓰기 전에 하는 의식과 같다. 글쓰기를 준비하는 과정이랄까. 담배와 맥주의 조합은 정신을 적당히 느슨하게 하고 차분하도록 만든다. 산책하면서 정리한 생각들이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바로 튀어나올 수 있도록 잡아두기도 하고.
집에 와서 나가기 전에 우려놓은 루이보스 차를 가지고 의자에 앉으면 적당히 식은 차의 맛이 기분을 좋게 한다. 지금도 맥주와 담배, 그리고 루이보스 차의 응원을 받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은 회고록 수정을 마칠 수 있길 바라며 일하러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