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만든 공간> 서평
넓고 깊게만 보여지는 강을 가슬러 올라가면 그 발상지가 작은 샘이라는 것에 놀라게 된다. 마찬가지로 현재 인간의 문명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 시작이 우리의 생각만큼 굉장하지 않다는 것에 흥미를 느낄 수 있다.
<공간이 만든 공간>은 기본적으로 건축이라는 안경을 통해 문명을 바라본 책이다. 여기에서 문명이란 단지 공간적인 의미 - 4대 문명 - 뿐만 아니라 동서양의 사상, 문화, 기술의 발전 등을 포괄하는 의미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단순히 건축을 건물을 짓는 기술이나 방법으로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책의 내용 또한 기껏해야 건축의 발전사를 다룰거라 짐작했었고. 하지만 첫 장을 넘기자마자 이런 내 생각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저자가 밝혔듯 이 책은 "사람의 생각이 어떻게 발생하고, 서로 다른 생각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 융합되고 어떻게 생각의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지 추리해보는 책"이다. 어떻게 보면 건축은 매개물에 불과하다고 느낄 정도로 방대한 분야를 살펴본다.
환경, 특히 기후변화가 농업을 등장시켰고 지역별 강수량 차이는 각기 다른 농작물을 재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 차이는 건축 구조 뿐만 아니라 문화적 차이, 사고 방식의 차이 - 서양의 개인주의와 동양의 집단주의 - 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저자는 간단해 보이는 기후변화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고 이것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내었는지 주목한다. 우리는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면서 지금의 동서양의 차이가 사실은 아주 단순한 분기점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서로 다른 '문화 유전자'는 처음부터 어떤 큰 차이로 인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조금씩 시작된 것이었다.
환경의 차이는 건축과 생활양식, 문화의 차이를 이끌어 내었고 기술의 발전에 의해 서로 교류하면서 새로운 생각이 생겨났다. 삼각돛으로 보다 폭넓은 교류가 가능해지면서 각 문화들이 섞이고 영향을 주고 받게 되었다. 지금까지 기하학에 치중하던 서양의 건축에서 동양의 도교적 요소가 등장하고 불국사에서는 서양의 기하학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또한 이후 건축가들은 동서양의 문화를 건축에 녹여내기 시작한다.
이 책의 부제는 <새로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다. 저자의 말을 빌려 이 질문에 답을 하자면 "창조적인 생각은 항상 '다른' 유전자와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기후변화로부터 시작해 건축을 둘러싼 각기 다른 문화 유전자를 살펴보고 문화의 교류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그리고 기술의 발전이 건축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들여다보면 새로운 생각이 무에서 시작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서 마치 문명 개론서, 혹은 문화의 기원에 대한 책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기후변화, 농업의 등장, 농작물 차이로 인해 생긴 사고방식의 차이, 기술의 발달이 문화에 미친 영향 등 건축만을 다룬 책이라 하기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소개되기 때문이다. 특히 건축에 반영된 철학과 문화를 살펴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고 왜 파리가 문화의 도시가 되었는지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깊었다.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 뿐만 아니라 문명과 문화의 시작이 궁금한 사람, 동서양의 차이가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