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덮친 스노우볼
한동안 잠잠했던 코로나가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약 한달간 지역 감염이 없었던 대전은 연일 확진자가 속출하고 있고 이로써 짧았던 불안정한 평화가 끝났다. 그동안 대전에 확진자가 생겼어도 다른 동네에서만 있었기에 비교적 걱정을 덜 했었지만 이번에는 집 근처에서 확진자가 여럿 나와서 이전과는 다른 불안감과 공포를 느끼고 있다.
코로나는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았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는 그 무엇보다 더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그리고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사람' 또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고. 과거에 비해 비교적 안전한 -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상당히 자유로워졌고 전쟁이나 기아, 폭력으로부터 지금처럼 안전한 시대는 없었으므로 - 요즘 가장 큰 두려움은 코로나가 아닐까 싶다.
항상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게 된 것 이외에도 온라인 수업이나 재택 근무, 마스크 착용 등 여러 면에서 일상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각종 문제와 불편함이 생겨났다. 그중에서 내가 흥미롭게 지켜본 것은 '가족 문제'다.
코로나 이야기를 하는데 뜬금 없이 가족 문제, 즉 가족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고 어쩌면 코로나 자체보다 더 중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얼마 안되서 엄마한테 이런 말을 했었다. 코로나 때문에 외부 활동을 하느라 집에 모여 있을 시간이 없던 가족이 함께 있으니 크고 작은 갈등이 생겨 이혼이 늘어날수도 있겠다고, 적어도 여성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급격히 증가할 거라고(이것은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가사 노동의 대부분이 여성의 몫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가족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 사랑의 정도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럴수도 있겠다 하면서도 일말의 의구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얼마 뒤 관련 기사가 나오면서 내 예언(?)은 현실이 되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가족 구성원들이 각자의 신분에 맞게 외부 활동을 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직장인은 일터로 학생은 학교로, 어린아이들은 유치원에 갔고 전업주부인 경우에도 가사 노동에 쓰는 시간 이외에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움직였고 그 무대는 주로 외부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온 가족이 모이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바쁜 사람들은 그저 잠만 자러 집에 가는 경우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학교와 유치원이 문을 닫고 심지어 재택근무까지 하게 되자 가족 모두가 집에 있는 시간이 대폭 늘어났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는 건 단순한 시간의 증가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먼저 외부에서 해결하던 식사를 집에서 해야한다는 '중대한' 변화가 있다. 고작 식사가 그렇게 중요하냐는 생각이 들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결코 작지 않다. 배달 음식도 하루 이틀이지 적어도 한 끼는 집에서 해먹어야 한다. 아무리 간단하게 한다고 해도 누군가의 수고가 필요한 일이고 재료를 준비하고 설거지를 하는 등 부수적인 작업이 수반된다. 따라서 식사를 집에서 한다는 것은 가사 노동의 증가를 뜻하고 이는 가사 분담의 문제로 이어진다. 가사 분담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집에서는 이전보다 확연히 늘어난 가사로 인해 전담하던 사람의 부담이 늘어나고 이것은 크고 작은 갈등을 발생시킬 수 밖에 없다.
늘어난 것은 가사 노동만이 아니다. 각자의 일정에 따라 움직이던 예전에는 각자의 삶, 각자의 사생활이 어느 정도 보장되었다. 집 밖에서 보내는 시간에 서로 어떻게 보내는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몰랐고 서로 적잖은 갈등이 있다해도 집을 벗어나면 잊어버릴 수 있었다. 외부 활동은 가족 내에 존재하는 갈등을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수면 아래에 있던 갈등이 표면 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드러난 정도라면 그나마 괜찮다. 심지어 폭발하는 경우도 존재하고 이혼을 고려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참고 넘어갈 수 있었던 일들이 - 하루에 한 두번 겪는 일이라면 쉽게 잊고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 - 용납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실제로 관련 기사에는 매일 '집구석'에 있는 아이들과 남편을 보는 게 너무 힘들다고, 늘어난 가사를 홀로 책임져야 하는 당사자의 애환(?)이 담긴 댓글들이 많았다. 아이들이 어린 경우 온라인 수업시에 옆에 있어야 하고 문을 닫은 유치원을 대신해 돌봐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전에는 비교적 가벼웠던 자녀 교육과 돌봄의 무게가 무거워졌고 여기에 가사 노동의 짐까지 더해져 참기 힘들 정도가 된 것이다.
옆나라 일본도 사정은 비슷해서 집에만 있는 남편과 아이들이 꼴도 보기 싫다, 당장 이혼하고 싶다, 심지어는 남편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사람들의 글들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 있게 된 것은 작은 사건, 주먹만한 눈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눈덩이가 구르고 굴러 만들어낸 결과는 결코 작지 않았고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직격탄을 날렸다.
코로나로 인해 의료 체계나 복지 등 여러 제도적 문제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잘 준비가 되었던 부분도 있었으나 대다수는 미흡했고 여러 해결책이 필요했다. 그리고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가족 또한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코로나는 그간 쌓아온 가족의 관계를 판정할 수 있는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미드 <뉴스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문제를 해결하는 첫 단계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가족 내 갈등이 드러났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갈등을 그대로 두든지 아니면 갈등을 '인식'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 여기에는 다양한 선택지가 존재한다. 이혼도 그 중에 하나인데 꼭 이혼이 나쁜 선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이미 거의 가라앉은 배는 고치려고 해봤자 소용이 없듯 가족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느 시점에서는 서로 각자의 길을 가는 것이 최선일 때가 있다 - 하든지 말이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가족은 안녕한지, 가족이라는 배가 순항하고 있는지. 각자의 대답 속에 사랑과 행복이 담겨 있기를, 그리고 코로나 이후의 삶 또한 그러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