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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go Nov 06. 2020

"내가 나중에 최고급 양로원에 보내줄게!"

기질은 과연 있는 걸까

요즘 읽고 있는 <선심 초심>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어떤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단지 가르침을 배우는 것만으로는 '나'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의 인간성을 이해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그 가르침은 우리에 대한 어떤 설명에 불과할 뿐, 그 내용이 우리 자신은 아닙니다.


과거에는 철학이나 종교가 인간 이해의 주된 도구였다면 지금은 심리학과 과학에 그 권위를 넘겨주었다. 최신 연구 결과들이 인간에 대한 새로운 견해들을 제공하고 그로 인해 우리는 그동안 알고 있었지만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이나 전혀 알지 못했던 것들을 깨닫게 된다.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는 내게 심리학과 과학, 특히 뇌과학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졸업하고 나서 전공을 살리지 않으면서도 어쩌면 학부 때보다 더 두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심리학과 뇌과학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부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의 경우에는 자신의 미해결 과제나 트라우마 등을 해결하고 싶기 때문에 심리학과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심리학에서, 그리고 뇌과학에서 장기간에 걸쳐 논쟁거리가 되는 주제가 여럿 있지만 그 중에 일반 대중에게까지 갑론을박을 벌이게 하는 것이 있다면 "기질"이다. 인간에게 타고난 성격이 있는가, 아니면 인간은 그저 환경에 따라 구성된 존재에 불과한가 라는 주제는 양쪽 진영이 팽팽히 맞서고 있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제3의 길, 비율의 차이가 있지만 둘다 영향을 미친다는 입장도 등장했다. 


여러 이론들이 있지만 그런 이론들보다 직관적인 내 경험에 근거하면, 기질이란 것은 존재하며 각 개인마다 명백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같은 환경 - 물론 절대적으로 같은 환경이란 없겠지만 - 에 처해 있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고 그것이 서로 다른 삶을 만든다. 


이런 내 생각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에피소드로부터 탄생했다. 그 시절에는 신문으로 공부하는, NIE가 유행이었고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신문을 가지고 엄마와 대화하며 세상에 대해 배워나갔다. 


어느날, 신문 기사 중에 노인 문제, 특히 노년의 부모님을 모시는 문제를 다룬 내용이 있었다. 이 기사에 놓고 대화를 하다가 엄마는 이런 질문을 했다. "나중에 엄마가 늙으면 같이 살거야?"


효 사상이 만연해 있는 한국 사회의 정서상, 그리고 아직 개인주의와 핵가족화가 그다지 발전되지 않았던 그때의 기준으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같이 산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모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게 평균이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엄마도 내심 이런 대답이 나오리라 예상했고 그러길 기대했다고 한다.). 8살, 초등학교 1학년인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2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엄마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내 대답은 간단했다.


내가 돈 많이 벌어서 최고급 양로원에 보내줄게!


예상과 다른 대답에 엄마는 약간 당황했고 조금 섭섭했으며 동시에 내가 평범하지 않다는,  '아, 얘는 어리면서도 개별성을 추구하는 성향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다행이었던 것은 대학교 시절에 외국인 교수의 지도를 받았던 탓인지 엄마는 이런 내 성향을 이해해주었고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며 웃음 짓는다.  


내 대답이 엄마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이유는 비슷한 질문에 대해 형은 정반대의 답을 했기 때문이다. 형은 3층 집을 지어서 외가와 친가, 우리 가족이 함께 산다는 말을 했다. 어릴 때부터 꽤나 달랐던 형과 나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답변이었고 이것은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되어 극외향의 형과 극내향의 내가 되었다. 


엄마는 종종 같은 뱃속에서 나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는지 신기함과 혼란스러움, 고단함을 담은 말을 하곤 했다.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중시하며 가족이라해도 사생활과 독립적인 영역의 존중을 원하는 나와 사람을 좋아하고 활발하며 함께 활동하는 걸 좋아하는 형 사이에서 엄마가 느꼈을 고충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나마 형은 엄마와 비슷한 면이 꽤 많아서 이해하기 쉬웠겠지만, 그렇지 않은 내가 엄마에게는 외국인을 대하는 것처럼 낯설고 어려웠을 것이다. 마치 내가 엄마와 형의 성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고 어느 정도는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존중해주는 편이지만 지금에 이르기까지 겪어야 했던 갈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엄마는 어느새 나이가 들어 환갑이 되었다. 과연 나는 엄마를 최고급 양로원에 보내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돈을 벌어야 할텐데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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