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랖도 적당히
잠이 깼다. 4시간 조금 못잤는데 어차피 오후에 잘거기도 하고 한 번 깨면 잠들지 못하기 때문에 누워서 뒹굴뒹굴하기로 한다. 일반적인 현대인의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켜서 이것저것 한다. 제일 마지막으로 하는 건 네이버 뉴스 보기. 웬만하면 댓글을 안다는데 오늘은 욱하는 마음에 써버렸다.
내가 정말 오랜만에 댓글을 쓰게 만든 기사는 코로나로 인해 강제휴직을 당하던 승무원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했다는 기사였다. 나이는 27살. 안타깝기도하고 요즘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승무원의 선택이 이해됐다. 그리고 댓글을 봤는데, 보는 순간 너무 화가 났다.
27살에 극심한 생활고가 있을 수 없다, 우울증 때문이다, 조금만 참지 왜 그랬냐, 승무원하면서 사치부려서 돈이 없기 때문에 그런거다 이런 댓글들이 많았다. 안타까운 일에 그렇게 훈수가 두고 싶고 사족을 붙이고 싶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이가 어리다고 생활고가 없는 것도 아니고 연초부터 계속 휴직을 했다면 거의 10개월 가까이 수입이 없었다는 건데 어떻게 버티라는 걸까. 승무원들은 겸직 금지까지 있어서 다른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다. 만약 이 승무원이 금수저였다면, 집에서 보조해 줄 수 있었다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족들의 말에 의하면 연초부터 시작된 휴직으로 인해 상당한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유족들이 알고 있었음에도 자살했다는 것은 유족들과 사이가 엄청 안 좋아서 의절했다거나 - 근데 생활고가 있다는 걸 알 정도면 사이가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아예 단절되었으면 서로의 소식도 모를테니까. 게다가 이 승무원의 죽음을 안 것이 연락이 되지 않는 다는 어머니의 신고 때문이었다는 걸 보면... -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었던 상황이 아니었을까 싶다. 관계가 어느 정도 괜찮은 가족이라면 힘든 걸 알면서도 방치하긴 어려울테니까.
차라리 퇴사를 했거나 해고가 되었다면 조금 더 나았을 수도 있다. 실업급여를 받거나 알바라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어렵게 들어간 직장을 - 승무원이 되기가 어렵다고는 들었다 - 그만둔다는 것도 쉽지 않고 언젠가는 복귀할 수 있을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버텼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장기화 되면서 일부 항공사들이 문을 닫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그 희망이 사그러든 게 아닐까.
승무원의 죽음 앞에서 이런 저런 말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 승무원의 죽음이 단지 우울증 때문에, 사치를 부려서, 의지가 없어서 그런거냐고. 자살하는 사람의 대다수가 우울증이라고는 하지만 100%는 아니다. 우울증이나 기타 정신병적 이유로 인한 자살에는 명확한 동기가 있는 경우가 드물다. 지속된 자살사고가 증상의 악화로 인해 자살로 끝맺는 경우가 많다(물론 자살사고의 기반에는 지속된 증상으로 인해 좌절했다거나 보다 명확한 경우가 있기도 한데 이것이 우울증이 꼭 자살로 이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그렇지 않은 자살에는 구체적인 상황과 명확한 이유가 존재한다. 더 이상 개선의 여지가 없을 때, 희망이 사라졌을 때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나 어려움을 극복해서, 성공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훈수질하는 사람들은 타인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나는 이렇게 해서 극복했고 성공했다 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 또한 타인에 대해 쉽게 충고의 말을 건넨다. 하지만 각자의 상황과 입장이 다르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당신에게 허락된 것들이 그들에게는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 제발 자기 입장에서 이러쿵 저러쿵 오지랖 좀 그만부렸으면 좋겠다. 이런 행동은 정말로 상대방을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기 보다 그저 자신의 우월함을 자랑하기 위해 그런 경우가 많으니까.
승무원의 죽음에 대해 애도를 표하기 보다는 훈수를 두려고 하고 죽음의 이유를 자기 마음대로 짐작해서 비난에 가까운 댓글들을 다는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나는 그게 너무 궁금하다.
+진위 여부는 분명하지 않지만 사망한 승무원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동생을 대학교에 보내고 어머니까지 먹여살리는 가장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집 전세금 문제도 있었다는데 남의 인생에 이래라 저래라 훈수하는 사람들이 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이것도 정말 궁금하다.
+어제 5개월 만에 대학가에서 친구를 만나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정말 많은 가게가 폐업을 했거나 문을 열지 않았다. 집 근처였음에도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느라 오랜 만에 대학가를 찾은 친구는 식당을 찾아다니면서 자기가 잘가던 식당들이 폐업한 것을 보고 많이 놀랬다. 친구의 직장은 그다지 코로나의 영향을 받지 않는 직종이라 힘들다는 건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나도 코로나 이후로 처음 외식을 하는 거라 이런 상황을 몰랐기에 내가 보고 있는 상황이 현실인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