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차니즘의 근원
이마트 장이 왔다. 며칠 전부터 오뎅 노래를 부르던 엄마는 오뎅 볶음을 해먹겠다고 한다. 며칠 전에 내가 해준 오뎅국을 먹었으니 이번에는 볶음이라나.
외출하고 들어오니 엄마는 쿨쿨 자고 있었다. 어제 성당에 갔다오고 그래서 피곤한지 어제 오늘 헤롱헤롱 정신이 없다. 마침 나도 오뎅 볶음이 생각나서 엊그제 끓인 순두부 찌게를 다시 끓일 겸 - 급하게 만들다보니 계란과 청양 고추 등을 깜박했다 - 요리를 시작했다.
오뎅 볶음은 처음이라 네이버의 힘을 빌렸다. 레시피 몇 개를 보고 상황에 맞춰서 내 방법대로 만들었다. 소시지와 오뎅을 뜨거운 물로 씻어주고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 뒤 파와 마늘 넣고 볶아준다. 후각을 자극하는 마늘과 파 냄새를 맡으며 마늘의 색이 변하길 기다린다. 그러고 나서 오뎅과 소시지를 넣고 볶는다. '적당히' 볶고 물을 '적당히' 넣은 뒤 소스 - 집에 있는 더덕 고추장에 케찹과 청양 고추로 만들었다 - 를 '적당히' 넣어 볶는다. 간이 배어들기를 기다리며 '적당히' 볶다가 끈다. 끝이다. 참 쉽죠?
레시피에는 물을 얼만큼 넣어라, 소스는 몇 숟가락을 넣어야 한다 등 계량해서 요리하라고 했지만 요리를 한두 번 해보나, 그냥 했다. 양식은 되도록이면 계량법을 지키려고 하지만 한식은 '감'으로 때려 맞춘다. 다행히 간은 적당했고 엄마는 맛있게 먹고 있다.
요리가 끝나면 설거지 거리가 나온다. 볶음이니 후라이팬은 기본이고 담았던 접시 등 줄줄이 딸려온다. 설거지 분담 규칙 - 요리한 사람이 요리하고 나온 그릇 설거지를 한다 - 에 의거하여 장갑을 끼고 설거지에 돌입한다. 후라이팬은 기름이 많기 때문에, 특히 고추장 같이 색이 있는 소스와 기름이 만나면 후라이팬을 잘 닦아줘야 한다. 볶으면서 들러붙은 소스는 후라이팬에 물을 넣고 잠깐 가열한 뒤 대충 떼어내고 싱크대에서 세제와 온수로 마무리하면 된다. 그리고 나서 키친타올로 닦아보면 거의 안 뭍어 나온다.
요리 하는 걸 좋아한다. 꽤 어릴 때부터 요리의 재미를 알았고 무언가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와 맛있는 결과물을 먹으며 얻는 만족감 때문에 곧잘 해먹는다. 다만 설거지는... 설거지는... 정말 하기 싫었다. 설거지 자체가 귀찮기도 하지만 먹고 나면 포만감에 늘어지다보니 더 하기 싫어진다. 그래서 슬쩍 싱크대에 밀어넣고 줄행랑을 치곤 했으나 얼마 전부터는 요리하자 마자 설거지를 하고 있다. 예전부터 "요리하는 건 좋은데 설거지 좀 어떻게 해봐라"와 "요리사들이 요리를 배우기 전에 설거지를 먼저 한다"는 엄마의 말에 복종(?)한 결과다.
빌 게이츠의 스트레스 해소법 중 하나가 설거지 하기라고 한다. 실제로 연구 결과에 의하면 설거지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내겐 귀찮기만 한 설거지가 그런 효과가 있다니 신기하면서도 딱히 하고 싶진 않다. 과연 이 설거지를 즐기게 될 날이 올까? 재미 없는 걸 재미 있게 하는 방법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