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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go Feb 06. 2022

영웅이 필요없는 사회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담고 있는 의미

영웅.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영웅의 조건에 대해서 잘 알려준다.

먼저, 영웅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 한다.

확실히 우리가 영웅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대게 위기의 상황에서 평범하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들이다.

이를테면, 화마에서 타인을 위해 희생한 소방관이나, 국가 혹은 전우를 위해 피를 흘린 군인, 이외에도 각종 사고나 사건에서 자신보다 타인을 위한 행동을 하고 그럼으로써 공공의 이익을 도모한 사람들이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영웅의 출현을 기대한다. 뭐, 태초 이래로 인간의 역사에서 태평성대였던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 비단 전쟁만이 아니라 인간에게, 연약한 인간에게 시시때때로 닥치는 위험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테니까.


우리는 왜 영웅을 바라는 걸까. 단지 생활에서, 직접적인 위험에서만 영웅을 원하는 게 아니다. 정치나 사상 면에서도 영웅을 원한다. 강한 지도자, 혼란을 종식시킬 사람, 길을 제시해 줄 사람을 원한다.


역사적으로 위인이라고 할만한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영웅이라고 추켜세울 만한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 영웅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가는 생각해봐야 할 여지가 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는 그런 의미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영화다. 할리우드의 문법에서 미묘하게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다들 알다시피 미국은 영웅 사회다. 각종 히어로물이 인기를 끄는 것 뿐만아니라 군인 등 영웅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선망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유독 할리우드의 영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영웅, 위기를 돌파하는 한 개인을 조명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람보 라든가 아이언맨이라든가… 그런 캐릭터들 말이다. 사회 부조리에 저항하고 악의 축들을 박살내는 존재들.


다크 나이트 라이즈 또한 영웅이라고 할 만한 존재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 영웅은 고개 숙인 영웅이고, 이전의 영웅과 달리 맹목적인 추앙과 찬양을 받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세상을 구하지만, 실패를 겪고 세상에서 배척당한다.


영웅은 실패할 수 없는 존재다. 대중의 외면을 받아서도 안된다. 이것이 기존의 영웅의 문법이었다. 비록 배트맨이 다시 일어서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가 겪은 좌절이 무시할 만큼 가볍지 않다. 이전의 영웅들이 겪지 않았던 내적 갈등 또한 깊었고.


영화 후반부, 최후의 희생을 앞둔 배트맨에게 누군가 묻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구한 영웅이 누군지 알아야 하지 않겠나?”

이에 대해 배트맨은 이렇게 답한다.

영웅은 누구나   있어. 어린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코트를 벗어주며 아직 세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간단한 것을   아는 사람이면 충분해.“


영화는, 배트맨은 영웅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부정한다. 우리는 흔히 영웅을 남다른 사람, 자신처럼 평범한 사람은 절대 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웅의 조건인 영웅적 행위가 특별하고 대단한 것일거라 여긴다.


하지만 배트맨은 ‘간단한 것’을 할 줄 아는 사람, 즉 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백마탄 초인을 바라고 자신을, 세상을 구해줄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어쩌면 그런 사람은 없을지도 모른다. 고담시를 구했던 건 배트맨의 역할도 있지만 그를 따라 두려움을 지닌채 함께 나섰던 고담시의 경찰들이었다.


배트맨은 왜 영웅이기를 거부했을까. 이것은 단지 대중의 추앙과 관심, 맹목적인 사랑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영웅으로 추앙받았던 사람들이 악마적인 독재자로 변질되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뛰어난 업적으로 칭송받았던 사람의 몰락을 봐도 그렇지 않은가.


인간은 자유를 원하지만 그 반대로 그 자유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 때문에 자신의 자유를 누군가에게 위임하고 싶어하고 대게는 그게 영웅, 혹은 지도자가 되기 싶다. 그리고 그 끝은 자유의 죽음, 전체주의나 맹신 만을 남길 뿐이다.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참고)


그런 의미에서 영웅은 없어져야 한다. 아니, 모든 사람이 영웅이 되어야 한다. 타인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의 영웅이 되어야 한다. 조지프 켐벨이 “ 우리 인생은 영웅의 여정이다. 여러분이 여러분 스토리의 영웅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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