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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go Nov 02. 2022

7년차 양극성 장애 환자입니다만 1

그럭저럭 살만 한데 그렇다고 좋다는 건 아니야

발병은 2014년 여름, 진단은 2015년 봄.

진단과 동시에 약물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올해로 만 7년이 넘은 셈.


솔직히 말해서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힘들었다. 힘들었다는 말로는 부족하고 비속어로 표현해야(이를테면 *같다?) 그 무게가 적나라하게 드러날만큼 고통스러웠다.


약물치료를 시작하고 5년 정도는 거의 죽은 사람처럼 지냈다. 약에 취해서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도 잘 모르겠더라. 사람 바보 되는 게 한 순간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시간들이었다. 사육당하는 가축의 느낌이랄까. 자고 먹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다시 잔다. 그게 거의 대부분의 나날들이었다.


양극성 장애는 정신질환 중에 약물치료 난이도가 매우 높은 질환에 속한다. 사실상 양극성 장애에만 단독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이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조증과 우울증 둘 모두 신경 써야하기 때문이다. 조증을 치료하는 것도 어렵지만 우울증 또한 만만치 않다. 조증에 비해 더욱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 


우울증, 그러니까 우울 삽화의 치료가 어려운 이유는 우울증 약 중에서 양극성 장애 환자가 사용할 수 있는 약물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우울증에 사용하는 약물을 사용할 경우 조증을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항우울제보다는 다른 종류의 약물을 처방하거나 병용해서 투여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에는 라믹탈과 웰부트린으로 대응하고 있고 평상시에도 두 가지를 복용한다. 증상 혹은 상황에 따라 용량을 조절하는 방식이다. (라믹탈은 양극성 우울증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져 있고 웰부트린은 양극성 장애 환자가 사용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항우울제다)


때문에 양극성 장애 환자들은 약물 치료 초기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심리학 전공자로서 약물치료가 얼마나 중요하고 대체할 다른 치료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던 나조차도 때려치고 싶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그러니 다른 환자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약물치료를 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약물 치료를 중단한 적이 없다. 어쩌다 깜박해서, 일찍 잠들어서 못 먹은 적은 있어도 고의적으로 중단한 적은 없다. 온갖 부작용에 시달리면서도 4년을 버티고나서 겨우 맞는 약물을 찾아서 한결 나은 삶을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약물치료가 편하지는 않다. 필요악의 느낌이랄까. 약물 치료를 지속한다고 해서 완치되는 것도 아니고 재발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단지 빈도와 재발의 강도를 경감시시킬 뿐이다. 아무리 약물 치료를 잘해도, 관리를 잘해도 재발은 거의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연구에 의하면 양극성 장애 환자들이 평생 1회 이상의 재발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것은 양극성 장애 환자들이 자살을 시도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양극성 장애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자살이다. 나 또한 자살 사고로 인해 세 차례 입원을 했었고 실행직전까 갔었으며 비교적 안정되었다고 할 수 있는 지금도 자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럭저럭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아무 이유없이 거의 강박적으로 자살 생각이 날 때도 있다. 증상이 심할때는 하루 종일 자살 생각만 한다. 아마 평생 그럴 것 같다. 그 이유는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양극성 장애 환자를 괴롭히는 재발 문제 때문이다. 


자살과 재발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우선 환자는 재발에 대한 공포를 느끼며 산다. 인간은 안정을 느끼기 위해 통제를 선택한다. 불안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이 상황을 통제 혹은 관여하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온다. 양극성 장애 환자에게 재발은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는 것과 같다. 조증일 때, 감정과 에너지는 의지와 상관없이 분출된다. 조증 당시에는 자의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나중에 보면 끌려다녔다는 느낌이 강하다. 때문에 조증이 지나고 나면 그때 저질렀던 행동들에 대해 죄책감이나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당시에는 가능했다고 생각해서 시도한 일들, 예를 들면 사업이나 물건 구매 등이 이제보니 전혀 쓸모가 없었다거나 법적인 문제를 일으켜서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게다가 재발은 양극성 장애 환자의 삶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린다. 재발이 거듭될수록 인지 기능을 비롯한 각종 기능들이 영구적으로 손상을 입게 된다. 이로 인해 환자는 더더욱 절망감에 빠져들게 된다. 재발로 인해 즉각적인 피해가 생길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문제도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재발은 현재와 미래에 악영향을 준다. 재발이 되는 순간 일상 생활은 붕괴되고 모든 활동이 정지된다. 직장에 다니던 사람은 휴가를 내거나 퇴직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면 중단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계획을 세웠든간에 재발이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래 계획을 세울 때도 재발을 염두해 두어야 한다. 일반인들보다 더 여유롭게 계획을 세워야 하고 재발시 대처 방안까지 고려해야 한다. 치료를 위해 스케줄 변경이 자유롭게 이뤄져야 하는데 대부분의 직장에서 이게 가능한 경우는 없다. 때문에 대부분의 양극성 장애 환자들은 발병 직후 1~2년 내에 실직하게 되고 다시는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그렇기에 어느 책에서는 아예 양극성 장애 환자들에게 적합한 직업은 프리랜서라고 명시하기도 한다.





* 2편에서 쓸 내용 : 양극성 장애에서 감정 문제는 진짜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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