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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go Jul 24. 2023

미개한 나라

인도, 그 미개함의 역사에 대하여

미개하다 :

사회가 발전되지 않고 문화 수준이 낮은 상태이다.

(표준국어대사전)


불가촉천민을 폐지하고 그와 관련된 어떤 형태의 관행도 금지한다.
불가촉천민이라는 이유로 무엇을 하지 못하게 강제하는 것은
법률에 따라 처벌할 수 있는 불법행위다.
-인도 헌법 제17조


문명의 발상지이자 여러 종교가 태동한 곳이라서 그런지 어떤 사람들은 인도가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게는 야만과 미개함이 더 많이 보인다. 


내가 인도를 미개한 국가라 쓴 것에 대해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인도를 미개하다고 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떤 나라를 미개하다고 할 것인지 묻고싶다.

세계사에서 프랑스 혁명 이후로, 그리고 근대국가에 접어들면서 계급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현재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대부분의 나라는 '공식적'으로 계급제도가 없다. 때문에 계급에 따른 차별은 존재할 수 없다.

인도 또한 위에 인용한 헌법에서 보듯 '공식적'으로는 계급제도를 폐지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재 인도는 형태상으로는 민주국가이자 문명국가로 보이지만 실체는 카스트 제도가 생긴 수천 년 전(1)에 머물러 있다. 인도가 독립 이후 헌법에서 불가촉천민(달리트)을 없앴으나 현재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의 수는 2억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다.(2)


정상적인 국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올바르게 작동하고 있는 현대 국가에서, 법은 그 무엇보다 우선시된다. 이 말은 관습이나 문화, 통념이 아닌 법이 정당성을 가지고 있고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준법 정신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으며 법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에 대해 그것이 도덕과 관습에서 벗어났을지라도 그 어떤 처벌을 받지 않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가 발전되지 않고 문화 수준이 낮은 상태'에 있는 나라에서는 법이 유명무실하거나 관습이나 종교가 더 우위에 있다. 문제는 법 이외의 규범들 대부분이 비상식적, 비합리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엄을 짓밟는 다는 데 있다. 


인도에서 불가촉천민은 상위 세 계급과 가까이할 수 없다. 불가촉천민은 접촉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뜻이다. 따라서 상위 계급은 이들과 접촉해서는 안되며 접촉한 경우 정화의식을 치뤄야 한다. 심지어 달리트의 그림자와 접촉했을 때도 이 의식이 필요할 수 있다. 

'불가촉'은 단지 '접촉'의 금지를 의미하지 않는다. 불가촉천민(이하 달리트)은 컵을 따로 사용하고 사원에도 출입할 수 없다. 카스트에 따라 정해진 수도를 사용하기 위해 1킬로미터를 걸어야 하고 달리트에게 '허락된' 직업만 선택할 수 있고, '같은 계급'의 사람하고만 결혼할 수 있다.(2) 만약 그들이 다른 계급과 결혼할 경우 이 결혼은 '합법'이지만 법정을 나서는 순간, '불법'이 되고 이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인생은 오로지 '달리트' 하나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2)


뿐만 아니라 얼마 전 접하게 된 뉴스 또한 인도가 미개한 국가라는 평가를 내리는 데 한 몫 했다. 

[나체로 모녀 끌고 다니며 집단 성폭행...두 달 넘게 방치 인도 경찰 도마에]

https://n.news.naver.com/mnews/ranking/article/057/0001758131?ntype=RANKING


종교 갈등에서 비롯된 유혈 충돌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이다. 오래 전부터 버스에서 집단 성폭행을 한 사건을 비롯해 21세기에 있을 법한 일인지 의문스러운 일들이 자주 일어났던 인도였지만 이번 사건은 그 무엇보다 더 끔찍했다. 

경찰이 끌려가던 모녀를 구하긴 했으나 다시 폭도들이 그녀들을 데려갔고 경찰들은 그저 방관했다. 폭도들에게 압도당했다고는 하지만 이후에 증거도 충분한 상황에서 제대로된 조사와 처벌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정상 참작할 여지는 1도 없다. 


이 사건은 인도가 얼마나 미개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폭도들 앞에 공권력은 무력했고 폭도들은 단지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인간에게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했다.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을 보면 이게 과연 정상적인 국가에서 일어날 법한 일인지 의문스럽다. 특히 한국에까지 알려질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 이 정도라면 그 아래에는 얼마나 많은 범죄가 있을까. 실제로 신고되지 않은, 숨겨진 사건도 많을 것이다. 계급제도의 불합리함 중 하나는 낮은 계급에 대해 자행되는 폭력 혹은 불법은 처벌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법보다 카스트 제도라는 관습이 더 우위에 있는 인도에서 신분 때문에 피해자가 죄인이 되는 상황이 더 많을 거라는 건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인도 헌법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B. R. 암베르카드는 자신이 달리트였기에 그 누구보다 현실을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없애고자 노력했다. 때문에 독립 이후 제정된 인도 헌법에서 불가촉천민에 대한 차별을 금지시켰다. 하지만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꿈꾼 자유, 평등한 인간은 그저 공허한 문자로만 남았다. 



(1) 기원전 324년경 기록된 <아르타샤스트라>라는 책에도 카스트제도가 언급되었다. 어쩌면 이보다 훨씬 전부터 카스트제도가 존재했을 수도 있다.

(2) <좁은 회랑>,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3) 인도의 카스트제도에서 "같은 카스트하고만 결혼할 수 있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 이것은 반만 맞는 말로, 정확히는 "같은 카스트 내의 다른 고트라와 결혼할 수 있다". '고트라'는 부계 선조가 같은 씨족을 말한다. 문제는 현 인도 법률상 다른 카스트와의 결혼 뿐만 아니라 같은 고트라 사이의 결혼 또한 합법이라는 데 있다. <좁은 회랑>에 보면 같은 카스트이지만 같은 고트라의 사람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사례가 나온다. 살해자들은 그들의 친족이었는데, 이들 또한 지역 카스트 회의에서 배척 결정을 받았다. 이는 같은 마을의 그 누구도 이들과 대화해서는 안 되며 어떤 것도 판매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단지 같은 고트라와 결혼했다는 이유로 살해당한 사람들과 그들의 친족이었다는 이유로 배척 결정을 받은 사람들 모두 카스트제도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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