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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울 때는 아들이 아버지를 묻지만...

전쟁시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묻는다죠.

by Argo

제목과 소제목의,

“평화로울 때는 아들이 아버지를 묻지만, 전쟁시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묻는다”는 말이 누구의 말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쨋든 이 말은 전쟁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뒤바꾸어 놓는지 잘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방금 전에 <블랙 호크 다운>을 다시 봤다.

어제 저녁부터 보기 시작해서 오늘 다 봤는데, 사실 전부다 본 건 아니고, 액션 신이 시작되는 부분 부터 봤다.


이 영화는 일반적인 액션 영화와는 다른 점이 있다. 나중에 글을 쓸 예정인 <론 서바이버>나 <13시간>처럼 실화에 기반했기 때문에, 그리고 실제 전투들을 다뤘기 때문에더 긴장감이 넘치고 애처롭다(?).


영화 제목인 “블랙 호크 다운”은 실제로 영화에서 대사로 나오는데, 그 뜻은 헬기가 추락했다는 것이다. 출동하기 전 대원들은 단순 작전, 한 두시간 내에 돌아올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대원은 방탄 장비를 빼기도 하고 야시경을 챙기지 않기도 한다. 목표물을 잡아 호송트럭에 싣을 때만 해도 그들의 생각은 맞는 듯 했다. 그러나 “블랙 호크 다운” 이라는 말이 그 모든 걸 바꿔놓았다.


헬기 하나가 추락하고 그들의 계획은 완전히 어그러진다. 목표물 포획(?)에서 생존으로 목표가 변경된다. 그들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수천명의 적군 사이에 떨어졌고, 한 두시간 내에 종료될 예정이었던 작전은 18시간의 생존을 위한 사투가 되었다.


사실 인간이 하는 일이 다 그렇듯, 완벽한 작전과 그에 따른 완벽한 결과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영화는 그런 불확실성과 함께 젊은 군인들이 겪어야 했던 참혹한 전쟁의 단면을 보여준다.


기억나는 장면을 꼽아보자면,

첫번째는 에버스만에게 후트가 휘하의 대원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자책감에 휩싸여 있는 에버스만에게 후트는 헬기에서 추락한 대원과 방금 사망한 대원의 일은 네 잘못이 아니라고, 통제할 수 없는 일이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에 대해 생각하지 말고 지금 어떻게 살아 돌아갈 지만 생각하라고 한다.

인생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정말 별로 없다. 어쩌면 나 자신, 혹은 나 자신의 생각을 제외하고는 통제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거 같다. 후트의 말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집중해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보다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는 뜻으로 들렸다. 사실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해, 그리고 정말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사건에 대해 고민하고 걱정하고 자책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쓸 에너지마저 소모하게 만드는, 비생산적인 일이다.


두번째는 게리슨 장군이 수술실 바닥의 피를 닦는 장면이다. 영화 끝에 게리슨 장군이 작전의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는 걸로 나온다. 내가 느낀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수술실의 병사들을 보는 눈에서 죄책감과 미안함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바닥을 닦는 모습에서 책임감이라는 것을 보았다(아마도 내가 이런 생각을 한 건 우리나라 책임자들의 무책임함이 일상이어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찾아보면 우리나라도 그런 군인이나 지도자가 있을 수도 있지만, 외국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나 많으므로...). 우리나라라면 과연 저럴 수 있을지, 감탄했다.


마지막으로, 죽을 것을 알면서도 부상당한 동료를 위해 적진에 내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한 두명의 병사가 투입 명령을 요청하는 장면이다. 델타팀의 저격수 두명은 2번째 블랙 호크가 추락한 장소에 지원이 늦어지자 자기들을 내려보내 달라고 요청한다. 지휘부는 그들에게 정말로 내려갈 것인지 물어보고 그들은 내려간다고 답한다. 그들은 명령에 의해 내려간 것이 아니었다. 지휘부는 그들의 요청에 반대했으나 그들의 요청에 결국 허가하고 만다. 죽음이 뻔히 보이는 곳에 내려간 그들을 보며 전쟁의 참혹함과 폭력성, 국제 분쟁에 대한 갖가지 상념을 뒤로 하고 그 용기와 이타심에 감탄했다.


전투 장면들이 매우 사실적인 영화 중 하나이자 전쟁의 참혹함을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는 것도 괜찮겠다. 참, 마지막에 파키스탄 군대의 기지로 귀환하는 도중에 한 노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어린 아이의 시신을 안고 지나치는 장면이 나온다. 감독은 아마 이 장면을 통해 죽음의 균형을 맞추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대게 이런 류의 영화는 미군이 절대선이나 절대 선에 가깝게 그려지고 반대 편은 악으로 남는 경우가 보통인데, 이 영화는 비교적 중립을 지키려는 시도가 보인다.

(나는 여기서 또 한번 무신론을 더 깊이 믿게 되었다. 신이 존재한다면, 소말리아의 혼란과 죽음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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