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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go Oct 15. 2023

가해자가 된 피해자

내가 무조건 팔레스타인을 비난하기 어려운 이유

1.

역사, 특히 세계사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세계사, 특히 근현대사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해 누구 때문인지 모르겠다면 "영국"이라고 답하라, 그러면 절반맞는다.


2.

왜 그런지는 정말 정말 정말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영국은 '신사'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세계사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런 말을 하긴 어려울텐데 어찌된 일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일명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영국은 그 밑에 무수히 많은 피와 뼈를 쌓았다.

뭐, 지금의 강대국이라는 나라 중에서 식민 지배에서 자유로운 나라가 없다지만.


3.

고등학교 근현대사 책에 잠깐 나오긴 하지만 일본을 키워준 것도 영국이었다.

영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는데, 아시아에서 러시아를 저지할 장기말로 삼은게 일본이었다. 이름하여 영일동맹. 따지고 보면 조선의 식민지배에 간접적인 도움을 준게 영국이기도 하다.

(근데 생각해보니 영국이나 일본이나 똑같이 섬나라라 그런지 식민 지배로 악명이 높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영국의 디바이드&룰, 분열하여 지배하는 방식은 놀랍게도 똑같다.)


4.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멈출 줄 모르는 분쟁 또한 영국의 작품이다.

영국은 맥마흔 선언으로 아랍인들에게 그들만의 독립국가 건설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해놓고 밸푸어 선언에서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들의 "민족적 고향" 건설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맥마흔 선언은 1915년에 밸푸어 선언은 1917년에 발표했다.


5.

영국은 1차대전 당시(1914~1918) 적국이었던 오스만 제국을 약화시키기 위해 아랍인들에게 봉기하도록 부추겼다. 그러면서 전쟁에서 유대인들의 도움을 받고는 1차대전이 끝나자 팔레스타인을 위임통치령으로 만든 뒤 유대인들의 이주를 허용했다. 이때부터 팔레스타인은 중동의 화약고 역할을 맡게 되었으며 지금까지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6.

나치의 홀로코스트 이후로 유대인들은 일방적인 동정의 대상이 되어왔다.

물론 그들에 대한 나치의 학살은 매우 반인륜적인 행동이었고 유대인들이 피해자인 것은 맞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팔레스타인 앞에서도 피해자이기만 할까.

아무리 그들의 고향이라고 하지만 그런식으로 따지면 전세계는 민족들마다 자신들의 고향으로 가겠다 혹은 고향을 되찾겠다는 주장 아래 피를 피로 씻는 날들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7.

물론 팔레스타인이 민간인들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침략자이자 압제자인 이스라엘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무조건 비난하기는 어렵다.

당장 독립군만 하더라도 요인 암살을 비롯한 각종 사보타주를 벌이지 않았는가.

윤봉길 의사와 이봉창 의사의 의거, 청산리 전투와 팔레스타인의 무장 투쟁이 과연 다른 것일까.

그리고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과 그 국민들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적대 행위를 하는 것과 현재 한국이 일본과 일본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적개심, 적대 행위가 다른 것일까.

나는 이스라엘에게서 일본 제국을, 그리고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에게서 식민 지배에 신음하던 선조들을 본다.


8.

미국이야 이스라엘과 불가분의 관계고 유럽은 유대인들에 대한 부채 의식 때문에 대부분 이스라엘 편을 든다.

사실 나치가 유독 티나게 유대인들을 박해해서 그렇지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가지고 있던 전통이다. 유대인들은 그 어느 나라에나 있었지만 그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괜히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상인이 유대인이겠는가.


9.

다만 모든 나라가 이스라엘 편을 드는 것은 아니다.

한국과도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유일하다시피한 팔레스타인 지지 국가다.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약 800년간 차별과 탄압을 받았고 특히 '아일랜드 대기근'이라는 사건을 겪으며 수십만의 사람이 기근으로 사망했고 고향을 떠나야 했다. 이로 인해 800만이 넘던 인구가 200만까지 감소하게 됐다.


10.

물론 처음부터 아일랜드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본래 아일랜드는 자신들과 비슷하게 차별당하고 탄압받던 유대인들을 지지했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자 등을 돌리게 된다.

정치인들이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발언(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벌어진 제재에 대해 팔레스타인은 70년간 이스라엘의 침략을 받았는데 가만히 있다며 이중적 태도에 대해 비판)을 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합병 시도에 대해 아일랜드인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2018년 북아일랜드와 이스라엘의 친선경기 당시 아일랜드인들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기 위해 만든 작품 Copyright © 2018 Extramural Activity

게다가 아일랜드인들은 실제적인 이스라엘 반대 운동을 하기도 하는데 일명 'BDS' 운동이라고 한다.

이는 보이콧(Boycott), 투자철수(Divestment), (경제)제재(Sanction)를 의미하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탄압에 대한 국제적 지원을 중단하고 이스라엘이 국제법을 준수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해" 하고 있다.

관련 사이트 주소: https://bdsmovement.net/

(이 사이트에서는 이스라엘의 행동이 식민주의, 아파르헤이트와 다른 없다고 비판한다.)


11.

긴 역사를 살펴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중에서 어느 편이 더 피해자인지는 명백하다.

하지만 세상이 어디 진실과 정의대로 움직이던가.

이럴 때면 "역사가 심판한다"느니 "정의가 승리한다" 같은 말이 얼마나 공허한지 새삼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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