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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go Oct 16. 2024

반전(反戰)의 반전(反轉)

누구를 위한 반전일까

당신이 전쟁에 관심이 없어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


누가 한 말일까.

언듯 보면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나 써 있을 법한 말이다.

하지만 이 문장은 그 유명한 공산주의자 '트로츠키'가 한 말이다.


나는 트로츠키의 말이 공산주의자들의 강령처럼 들린다.

공산주의의 사상적 올바름은 집어치우고 역사 속 행적들을 보면, 

공산주의가 침투한 곳에서는 항상 전쟁이 넘쳤다.

대표적인 게 바로 한국전쟁.

이 전쟁은 그 어떤 변명의 여지 없이 공산주의의 '업적'이다.

그래서 나는 트로츠키의 말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어도 공산주의는 전쟁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한국 전쟁 이후로 한반도는 전쟁 상태다.

정전?

연평 해전을 비롯한 무수히 많은 대남 도발의 역사를 보면, 이 땅은 절대 평화의 땅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전쟁에 관심이 없어도 전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쟁에 관심이 있다.


한국전쟁 초기, 국군은 제대로 된 전차 하나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반면, 북한은 소련에게 지원받은 전차들을 비롯해 각종 무기들로 넘쳐났다.

때문에 개전 직후 국군은 맨 손으로 전차를 막아야 했다.

말 그대로 맨손으로 폭탄을 들고 목숨과 전차 파괴를 등가교환 했다.

그저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육중한 강철의 거인을 인간의 몸으로 멈춰 세운 것이다.


그렇게 전차 없이 몸으로 전차를 막아야 했던 국군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 세계에서 손꼽히는 방산 국가가 됐다. 

솔직히 한강의 기적보다 나는 이 방산의 발전이 더 놀랍다.

왜냐하면 산업 중에서 한 국가의 총체적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가 방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한국의 상황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전차가 없어서 피로 전차를 막아내고 무기를 마련하기 위해 미국에게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던 비참한 시간이 끝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런 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하다.

반전(反戰).

이 단어를 신념으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 말이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36/0000050539


이 기사를 보면 마치 한국이 세계의 분쟁에 일조하고 있는, 마치 <로드 오브 워>의 주인공 같은 파괴의 전도사처럼 나온다. 

애초에 <한겨레> 신문에게 뭘 기대하겠냐마는 북한이 나날이 개수작을 부리고 있는 현 상황에서 무엇을 위해 이 기사를 쓴 건지 의문스럽다.


반전.

그래, 전쟁에 반대하는 거야 뭐 좋은 말이다.

그 누구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대놓고 전쟁이 좋다고 하진 않는다.

만약 이 글을 쓴 기자가 미국인이고 한겨레가 미국 신문이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현재 미국은 전쟁 중도 아니고 특히 자국 영토가 공격 받을 위험에 처해있지 않으니까.


하지만 기자도 신문도 모두 한국에 소속되어 있다.

당장 위에 자리잡은 사이비 공산주의 신정국가는 당장이라도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난리고

바다 건너에서는 한국 전쟁을 항미 원조 전쟁이라고 부르는 나라가 '중국몽'에 협조하라고 협박한다.

거기에 소련이라고 쓰고 러시아라고 읽는 국가는 그때 그 시절을 잊지 못해 다시 김일성의 손자와 협력하고 있다. 

옆집에 있는 식민 지배를 했던 유사 민주주의 국가는 덤이다.

이런 상황에서 반전? 반저언? 


기사의 댓글을 보면 이런 말이 있다.

한겨레 신문이 단 한번이라도 북한(원문은 북조선 왕조)의 핵무장을 비판한 적이 있냐고.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느낌적인 느낌으로 없을 것 같다.

있어도 솔직히 제대로 진지하게 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나는 한겨레로 대변되는 한국 사회의 진보 세력이 혐오스럽다.

반전이니 햇볕 정책이니 하며 북한에게는 친화적이면서 자국의 안보는 뒷전이다.

위의 기사에서는 "힘에 의한 평화라는 거짓 신화를 깨지 않고서는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전쟁을 막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고대 격언처럼 힘과 평화는 불가분의 관계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된 것도, 위의 기사처럼 현실을 부정하는 글도 버젓이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은 김일성과 모택동, 스탈린의 마수를 막아낸 '힘' 덕분이었다.

만약 그 당시에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지금 우리는 김정은 수령동지 사랑합니다 따위의 말을 외치고 장군님이 축지법 쓰신다 같은 소리를 듣고 살아야 했을 것이다. 

대한민국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처럼 되지 못해 아쉬운 게 아니고서야 '힘 없는 평화'라는 거짓 신화를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칼이 범죄자에 손에서는 흉기가 의사의 손에서는 생명을 살리는 도구가 되듯 한국의 무기 또한 마찬가지다.

무기가 자위 수단으로 쓰일지 말지는 소유자의 마음에 달려있다. 

한국이 이 무기로 사람을 죽이라고 '칼 들고 협박'한 적은 없다.

모든 전쟁은 결국 정치에서 비롯된다.

즉 무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니 애꿎은 한국 방산에 날 세울 게 아니라 이런 상황을 조성하는 세력들을 비판하는 게 맞다.

핵을 들고 틈만 나면 불장난하려는 김정은과 특별 군사 행동이라는 말같지도 않는 단어로 전쟁을 일으킨 푸틴에게, 그리고 하나의 중국을 외치며 대만을 합병하려는 시진핑 앞에서 그러면 안된다고, 반전을 외치는 게 먼저다.  


기사는 다음의 문장으로 마무리 된다.

‘여기 전시된 무기는 실제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입니다.’

여기에 대해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여기에 전시된 무기는 실제 전쟁터에서 사람을 살립니다.'

전쟁터는 적군과 아군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그리고 이 비정한 구분 속에서 적군보다는 아군이 사는 것이 낫다.

죽음 아니면 생존인 상황에서 무기는 적군을 죽이기도 하지만 아군과 자신을 살리는 수단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한국에 사는 반전주의자들과 친북주의자들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당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은 한국 전쟁 당시에 흘렸던 피와 그 때 쓰였던 무기 덕분이라고.

역사 속에서 힘 없는 평화가 있었던 시기는 단 한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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