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Hubris

트럼프는 왜 유럽을 기생충이라고 했을까

유럽식 복지라는 환상

by Argo


"I agree with him, they(Europe) are parasites, they have been for years,"
트럼프, 밴스 부통령의 말에 동의하며


트럼프와 그의 행정부는 유럽에 대해 기생충, 무임승차 라는 말을 거침없이 퍼부으며 방위비 증액, 관세 등으로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유럽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동맹을 흔드는 트럼프를 비난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트럼프는 동맹을 죽이기 위해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결론적으로는 아니다.

유럽의 역사와 현재 유럽의 경제에 대해 아는 사람은 지금까지 수십년간 유럽이 자신들의 안보에 대해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을 보였는지 알 것이고, 왜 미국이 저런 행동을 하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1차 세계 대전도 그랬지만, 2차 세계대전은 미국이 유럽을 구한 전쟁이었다.

말 그대로 미국은 소련과 영국에 막대한 랜드리스를 퍼부으며 무기와 식량, 기계 등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지원과 함께 종국에는 자국 군인을 파병해 전쟁을 끝냈다.

(많은 사람들이 의외로 모르는 사실은, 소련이 독소전쟁에서 큰 역할을 한 건 맞지만, 그조차도 미국이 지원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독일군에게 실시간으로 인적자원이 갈려나가는데 공장을 돌릴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 기술력 부족도 한 몫했고.)

심지어 미국은 태평양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유럽을 지원하는, 말 그대로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르는 기염을 토했다. 중국의 국민당을 지원한 것까지 포함한다면, 사실상 연합국의 본체 역할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냉전이 시작되자 미국은 마셜 플랜으로 유럽을 재건하는 한편, 나토라는 기구를 통해 유럽의 안보를 확보하려고 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이었던 미국의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NATO 창설 10년 후에도 미군이 유럽에 주둔한다면 NATO는 실패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나토는 미국이 유럽을 영원히 보호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스스로 지킬 수 있게 자립하도록 도와주는 수단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영국과 이탈리아, 독일, 폴란드에 미군이 주둔하고 있고 독일에만 3만 5천명이 넘는다.

미국은 1차 세계대전에서도, 2차 세계대전에서도, 그리고 냉전 시기를 지나 현재까지도 유럽을 지켜왔던 것이다.


트럼프, 그리고 미국의 요구는 의외로(?)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주장이다.

유럽을 기생충이라고 비난한 트럼프의 말은, 안보를 죄다 미국에게 맡겨놓고 국방 예산을 다른 곳에 썼다는 말과 같다.


나토 사무총장(Mark Rutte, 네덜란드 출신)은 이런 트럼프의 주장에 동의하며 지속적으로 나토 가입국가, 유럽이 국방비 예산 증액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 국가들이 평균적으로 국민 소득의 4분의 1을 연금, 의료, 사회보장 제도에 쉽게 지출한다며, 이 돈의 일부만으로도 국방력을 강화할 수 있고 강화된 국방력 없이는 평화도, 복지도, 그 무엇도 없다고 말했다.*(1)


실제로 유럽은 현재 냉전 시대보다 훨씬 더 적은 국방비를 지출해왔다. 유럽이 자신들의 국방을 얼만큼이나 미국에 의존, 아니 내다버린 수준이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이자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했던 나라다. 특히 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를 '6주'만에 무너뜨릴 정도였고 강력한 전차들로 연합국을 골치아프게 했던 역사가 있다. 그랬던 나라가,


"스포츠 센터, 양로원, 연금 기금 사무실을 포함한 군사 기지가 무너지거나 민간 용도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냉전 당시 서독에는 50만 명, 동독에는 30만 명이었던 독일군은 현재 18만 명만 남아 있습니다. 현재 독일군은 수백 대의 전차만 운용할 수 있는데, 이는 1980 년대 후반 서독군이 보유했던 레오파드 2 주력전차가 2천 대가 넘었던 것과 비교됩니다."
-월 스트리트 저널


심지어 킬 연구소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이 현재 노력한다고는 하지만, 주력 전차 2400대를 보유했던 2004년과 유사한 역량을 구축하는데는 막대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본격 침공이 시작된 지 1년이 넘은 후에야 조달 활동이 의미 있게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로 주문량은 상당히 적은 편이었습니다. [주문된 전차 123대가] 신속하게 인도된다 하더라도, 독일은 여전히 주력전차 440대만 보유하게 될 것입니다. 2004년 당시 2,400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훨씬 적은 수치입니다. 다른 무기 체계의 경우, 상황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조달 속도로는 2004년과 유사한 역량을 구축하는 데 수십 년, 아니 수백 년이 걸릴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약을 고려하면, 일부 무기 체계의 조달은 공약을 대체하기에 충분하지 않으며, 기존 억제 능력은 오히려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도 입증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유럽, 그리고 유럽인들은 미국이 자신들을 지켜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왔고, 지금도 그런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가 유럽 국가들에게 스스로 안보를 책임지지 않는다면 미국도 당신들의 안보를 책임지지 않겠다는 선언은, 결코 트럼프가 이기적이고 나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한 나라가, 특히 주권국가라면 자국의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상식이고 당연한 책임이다. 트럼프는 이런 매우 상식적인 사고 방식에 기초하여 동맹국들에게 그 책임을 다할 것을 요구하는 것 뿐이다.




우리는 여기서 유럽식 복지라는 환상에 대해서도 깨달아야 한다.

예전부터 유럽식 복지가 좋다는 것을, 한국의 복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동시에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해왔었다.

그리고 이 질문은 트럼프 덕분에 해결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국방과 안보의 '포기'였다.


나토 사무총장의 자기반성, 유럽이 그동안 안보에 대해 미국에 맡겨두고 국방 예산을 복지에 투자해왔다는 비판은 현재 우리가 부러워했던 유럽식 복지가 실제로는 허상에 불과했다는 말과 같다. 유럽은 안보를 포기함으로써 생긴 비용을 복지에 투자했고 유럽식 복지라는 빛좋은 개살구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들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트럼프라는 '빨간약'을 맞이해야 했고 이제 그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현재 유럽이 처한 현실은 단순히 안보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방 예산을 증액하기 위해 다른 예산, 특히 복지 예산을 감축해야 하지만, "탱크냐 연금이냐"를 선택하는 문제에서 국민들과 정치인들 모두 복지 축소에는 반대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금 현재 유럽의 주요 국가, 영국, 프랑스, 독일 모두 과도한 복지 비용에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독일은 수십 년간 복지를 유지하기 위해 재정 적자를 감수해야 했고, 메르켈 총리 시기에 증세를 통해 흑자로 잠깐 전환했으나 이제는 한계에 봉착했다.


특히 프랑스는 매우 심각한데 국가 부채는 3조 3천억 유로, 올해 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5.4%다. 프랑스 재무장관이 현재 상태가 지속될 경우 IMF가 개입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할 정도로 현재 프랑스는 매우 위험한 상태다. 하지만 현재 프랑스 국민들은 정부의 개혁안에 반대하며 전국적인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


유럽의 복지는 경제가 끝없이 발전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미래전망과 안보와 국방의 '포기'라는 망상을 근거로 하고 있었다. 한국을 포함한 여러 복지 국가들은 시간이 지날 수록 인기를 위해서든 필요에 의해서든 복지 정책을 늘려가며 소모되는 비용 또한 늘어간다. 문제는, 경제란 정체되기 마련이고 심지어는 후퇴하기까지 한다는 점과 안보와 국방 없는 국가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것이다.


게다가 한번 늘어난 복지는 줄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서 복지를 축소하려는 정부의 움직임을 거부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 잘 알수 있다. 과연 어디까지가 적절한 복지인지, 그리고 성장과 복지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하는지 심도 깊은 논의와 타협이 필요한데, 유럽 뿐만 아니라 한국도 그게 될까 싶다.







*

(1) 브뤼셀 콘서트 노블에서 열린 NATO 사무총장 마크 뤼터의 연설

https://www.nato.int/cps/en/natohq/opinions_231348.htm

On average, European countries easily spend up to a quarter of their national income on pensions, health and social security systems. We need a small fraction of that money to make our defences much stronger, and to preserve our way of life.

Some people will tell you otherwise. They think strong defence is not the way to peace. Well, they are wrong. Because without strong defence, there is no lasting security. And without security, there is no freedom for our children and grand-children. No schools, no hospitals, no businesses. There is no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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