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오늘을 위해 나는 과거를 기억할 것입니다.”

<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을 읽고

by Argo

-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20세기, 1950년 한국 전쟁, 그 비극의 한 가운데를 살아갔던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꼭 읽어야 할 책

* 평점 : 4.7(5.0만점)


여기에는 두 사람의 기록이 있다.

1932년 경기도 시흥에서 출생. 1956년 12월 26일 부상으로 의가사 제대.

1931년 레딩에서 출생. 1952년 2월 6일 전사.

출생년도가 비슷한 이 두 사람은 각기 다른 곳에서 태어났고 군인이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다지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시대 상황으로 봤을 때 이들이 만났을 가능성도 희박하고.

하지만 놀랍게도 이 두 사람은 하나의 사건, 그것도 한국전쟁이라는 20세기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실로 연결되어 있다. 1932년에 태어난 나의 할아버지와 1931년에 태어난 영국 청년 마이클은 각각 태어난 곳은 다르지만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이었고 이 땅을 위해 싸웠으며 피를 흘렸다. 그리고 마이클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2월의 추운 겨울날 부산에 묻혔다.


이 책은 영국에서 태어나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고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부산에 묻힌 데이비드 마이클 호크리지를 비롯해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영국군인, 그리고 저자의 아버지에 대한 책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영국군인들을 조사하고 그들의 삶과 기록을 접하면서 저자는 자신의 아버지와 아버지가 살았던 시대, 그리고 끝내는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이해해간다. 젊은 나이에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나라의 전쟁에 참전한 사람들, 그리고 영국에서는 ‘잊혀진 전쟁’이라고 불릴 만큼 알려지지 않은 한국전쟁, 한국전쟁 때 어린 나이에 피난을 와 힘겨운 삶을 살았던 아버지가 이리저리 교차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마치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950년, 낯선 땅, 이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영국 청년들이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들은 눈물과 피, 땀, 청춘의 한 조각을 내려놓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이 타고 왔던 배가 닻을 내렸을 때 그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전쟁에 학도병으로 참전하셨던 할아버지의 회고록 작업을 하면서 언젠가 할아버지의 기록들을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어떤 형태로든 책으로 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이 당시 사람들의 기록을 – 딱딱한 역사적 사건들만 나열한 역사책의 기록이 아닌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기록 – 읽어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봤으니 놀랍고 신기했다. 그때 전장에 한복판에 있었던 사람, 그것도 “영국 청년”이라니! 안 그래도 회고록에 UN군이나 미군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서 그 사람들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는데...... 마음 속으로 “유레카!”와 “심봤다”를 번갈아 가며 외쳤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붙잡고 서평단에 신청하고 선정되어 책을 받았다. 책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받자마자 읽어야겠다며 벼르고 있었는데 웬걸, 오고나서 한참이 지나도록 읽지 못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할아버지 회고록 작업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던 게 생각이 나서 또 그러리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와 각별한 관계였던 나는 할아버지의 회고록 작업을 하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고 그래서 하는 내내 슬픔에 눈물을 흘렸었다. 내게 한국전쟁은 그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할아버지와 내 삶 속에 살아 숨쉬는 기록이었기에 다른 사람에 비해 무거울 수밖에 없었고, 한국전쟁에 참전한 영국인, 그것도 내 나이대의 청년의 이야기를 쉽게 읽을 수 없었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해서 휴지가 열일해야 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마음과 생각에 공감이 많이 갔다. 저자가 영국 청년들의 이야기와 기록을 되짚어 가면서 아버지에 대한 생각과 감정의 변화가 있었는데 나또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내 어린 시절에 큰 영향을 미친 할아버지는 학도병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하셨다. 저자가 그랬듯이 나도 성장하면서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정치에 대한 말이나 고정관념에 의한 말을 듣기 싫었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있었기에 사이가 멀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회고록 작업을 선 듯 하겠다고 한 것이고.


단순히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드리려고 시작한 일이지만 오히려 내가 얻는 것이 더 많다. 할아버지의 정갈한 손글씨를 타이핑하면서 할아버지의 삶뿐만 아니라 그 삶 속에 녹아있는 그 시대의 모습들, 할아버지와 동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엿볼 수 있었다. 회고록 작업을 하면서 나는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세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왜 ‘태극기’를 들고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는지, 특정 정당과 특정 정치인에 환호할 수밖에 없는지 말이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생각과 다른 주장을 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외면하고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게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려고 하다보면 우리와 그들 사이의 간극은 조금씩 줄어들고 서로의 의견이 일치되지는 않겠지만 지금처럼 극한의 대립까지는 가지 않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영국 청년 마이클의 한국전쟁>은 한국전쟁을 이전과는 다른 –영국청년과 한국전쟁이라는, 꽤나 신선한 조합이니까- 관점에서 한국전쟁과 그 시기를 경험한 세대를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렇기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이 한 번은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인간은 누구나 자기 경험을 근거로 형성된 잣대로 세상과 남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경험을 통해 형성된 주관으로 사고하다보니 경험이 다른 사람들과는 크고 작은 의견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이런 의견을 줄이기 위해서는 기존의 경험 말고도 다른 경험을 해야 하는데 이 책은 한국 전쟁을 책으로만 접한 우리 세대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현충일을 기념하듯 영국에서도 11월 11을 추모일(Rememrance Day)라 하여 전쟁을, 그 전쟁에 참전하여 희생한 사람들을 기념한다. 저자의 소개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이 기념일에 전사자들이 실제 살았던 집에 그들의 사진과 약력을 붙여놓음으로써 그들이 단지 역사서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한 공간을 공유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고 한다.

살면서 문득 두려워 지는 건, 안타까워지는 건 무감각함이다. 어떤 사건이 닥쳐도 어떤 감정이 일어나도 무감각해지는 것. 그것은 호국의 달 6월과 현충일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영국이 이전 세대를 기억하는 방식을 보며 상투적인 구호와 기념일에 갇혀 유공자분들에 대한 마음과 기억도 평범해지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

또한 제국전쟁박물관에서의 에피소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1차대전을 기억하는 것에 대한 국민의 논란에 대해 안전요원에게 질문하자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그럴수록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요? 국가가 파병한 전쟁이므로, 그렇게 전쟁터에 나갔던 젊은이들이 결국 무엇을 위해 싸웠는지 우리가 토론하고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가르치지 않으면 결국 역사에서 사라지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이념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고 편향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토론’과 ‘생각’을 꺼려한다. 영국인 안전요원의 말은 우리가 한국전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고 지속적으로 논의를 해야하며 그 전쟁에서 치뤘던 희생에 대해 기억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줬다.


나는 오늘도 할아버지의 회고록을 타이핑하며 할아버지의 삶 속으로 헤엄쳐 들어간다. 거기서 나는 한 아이가 태어나고 산골짜기를 걸어다니고 학교에 가고 그리고 학도병으로 참전한 것을 본다. 그리고 그 학도병이 사회에 나와 이제는 ‘피’ 대신 ‘땀’을 흘리며 가족과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하는 모습도 지켜본다. 회고록에는 아기도, 소년도, 청년도, 아버지도, 노인도, 그 모든 존재가 다 함께 있다.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 중에 “짐 그룬디”라는 영국군 참전용사가 한 말이 있다. 그가 한국에서 ‘안보특강’ 때 했던 말이라는데 이 문장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당신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오늘을 바쳤습니다.”(For your ‘tomorrow’, we gave our ‘today’.)

나는 우리를 위해, 이 땅을 위해 스러져간 여러 청춘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의 오늘을 위해 나는 과거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들이 언제나 “오늘”에 있기 바라는 마음에 그들의 과거를 기억하는 것. 책에 나온 로렌스 비니언의 시에서 나오듯 기억하는 한 그들은 잊혀지지 않는다. 그들이 오늘 우리와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 나는 한국전쟁을, 한국에 발을 내딛었던 청년들을 기억할 것이다. 더불어 꽃다운 나이에 펜 대신 총을 잡고 사선을 넘나들었던 할아버지와 학도의용대, 그리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다 바친 모든 참전용사들도 잊지 않을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책, 너는 어디에서 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