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편지_ 생사의 갈림길에서 동료와 함께하다
2007년 겨울이었습니다.
구정을 며칠 남겨놓지 않은 어느 평일, 야간근무를 위해 출근하여 적재 장비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요즘은 환경문제로 잘 쓰진 않지만, 그때만 해도 소방차에서 물을 뿌리면 그 뿌린 물이 얼지 않도록 염화칼슘을 사용했습니다. 이 염화칼슘이 제대로 있는지 보려고 소방차 위에 올라가 터벅터벅 쌓여있는 염화칼슘 포대 개수를 세고 있었습니다.
화재 출동, 화재 출동, 창선동 국제시장 화재 발생!
영화 <국제시장>이 개봉되기 한참 전이었던 그때도 국제시장은 부산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유명한 재래시장이었습니다. 당시 제가 일하고 있던 안전센터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는데, 우리 센터가 출동하는 사건이라면 두말할 필요 없이 큰 규모의 화재일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더욱이 그곳은 6.25 전쟁 이전부터 소규모 점포가 밀집한 공간으로, 좁은 골목 사이로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려워 불이 났다면 대형화재일 터였습니다. 더구나 때는 구정을 며칠 앞둔 시점, 수많은 상인과 손님들이 물건을 사고팔며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다 보니 대형화재가 발생할 만한 요건은 충분해 보였습니다.
예상대로 소방차에 올라타자마자 끊임없이 무전이 울렸습니다.
인근에서 몇 대의 소방차가 먼저 출동했지만, 점점 커지는 화세에 대응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모양이었습니다.
불은 시장 안 몇몇 점포를 태우고 몸집을 불려갔습니다. 국제시장은 적산가옥이 밀집된 구조였는데, 적산가옥은 일제 강점기에 지은 건물로 일본 패망 이후 지금까지 남아있는 가옥의 형태입니다.
문제는 이 적산가옥이 대부분 목조건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우리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장 전체가 불타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소방차가 진입할 통로도 없이 오밀조밀 붙은 적산가옥들은 마치 아궁이에 서로 버티고 서있는 장작들처럼, 서로 머리를 맞대고 선 채 검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방차에서 내리자마자 검은 연기와 함께 매캐한 불 냄새가 우리의 목과 코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공기호흡기 면체로 안면을 가리고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우리가 맡은 건물로 향했습니다.
‘**분대는 건물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파괴하고 아래층으로 방수할 것!’
지휘관의 명령이 무전을 통해 하달되었습니다. 건물의 좌우 측면으로는 다른 분대가 진입하여 화재를 진압하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소방서에서는 한 센터의 인원과 장비를 통틀어 ‘분대’라고 표현하는데, 한 센터의 인력과 장비를 총동원해도 여의찮은 정도의 긴박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우리는 지붕을 뚫고 아래층으로 물을 쏘아 불을 끄라는 명령을 받고, 소방차 사다리를 편 후 건물 지붕으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공기호흡기를 쓴데다 면체까지 착용하고 나니 숨쉬기도 불편하거니와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팀장님의 발끝만 보면서 사다리를 한 걸음씩 올라갔습니다. 지붕에 올라가니 이미 소방관들이 뿌린 물로 기와가 미끄러웠습니다. 자칫 미끄러질까 조심하며 한 걸음 한 걸음 팀장님을 따라갔습니다. 팀장님이 앞서가면서 제게 뭐라 말을 했지만, 주위가 시끄러워서 잘 들리진 않았습니다.
“이 반장, 여길 깨자!”
지붕 중간쯤 갔을 때 팀장님은 앞에 있는 기왓장을 가리키며 거길 깨자고 말했습니다. 저와 동료는 준비해간 도끼와 해머로 그곳을 깨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단단히 고정한 기왓장이 잘 깨지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도끼질과 해머질을 했을까, 널빤지만 한 기와가 어느 정도 깨지고 그 아래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거기로 호스를 집어넣어!”
팀장님의 지시에 따라 저는 동료에게서 소방호스를 건네받아 밑으로 물을 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호스 대가리를 구멍 안에 넣으려고 발을 옮기는 순간,
‘와장창!’
‘와장창!’
굉음이 울리며 제가 밟고 있던 기왓장들이 한순간에 깨지고 아래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이미 물을 잔뜩 머금어 몇 번의 해머질과 도끼질에 그 주변 기왓장까지 다 깨져버린 것이었습니다.
제 몸도 기왓장들을 따라서 아래로 추락했습니다.
그 밑은 시뻘건 불길이 입을 벌리고 거대한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지만, 운 좋게도 저는 겨우 주변에 남아있는 기왓장 한 귀퉁이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마저 부서졌다면 이미 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즉시 팀장님과 다른 동료들이 달려와 절 끌어올려 주었습니다.
화재진압을 모두 마치고 나서 센터로 돌아가는 소방차 안에서도 저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였던 것 같습니다. 죽다가 살아난 경험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의 소방관 생활도 잘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사표를 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 팀장님은 그런 저를 묵묵히 바라봐 주었습니다.
센터로 돌아와서도 제게는 별다른 지시를 하지 않고 대기실에 가서 쉬라는 말과 함께 저를 다독여주었습니다.
며칠 후 팀별 회식에서 팀장님은 장어 쓸개즙을 넣은 소주를 권하며 제게 말했습니다.
“이봐라, 이 반장! 저번에 한 번 죽을뻔했제?”
“네.”
저는 술이 올라 알딸딸한 상태였습니다. 팀장님이 건넨 소주를 원샷으로 들이켰습니다.
“그래, 우리가 불을 끄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기라.
나도 소방서 밥 30년을 먹었지만, 나라고 이런 일 저런 일 없었는 줄 아나.
나도 이반장처럼 죽다가 살아난 경우도 부지기수야.
그래도 내가 이 바닥에서 버틸 수가 있었던 게 나와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그렇게 불 속에 떨어지는데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으면 어쩌겠노. 나도 이 짓 그만둬야지.
그런데 여긴 자넬 도와주는 동료들이 있잖아. 그러니 여긴 혼자서 죽을래도 죽을 수가 없어.
알겐나?”
“네.”
“그리고 그날 내가 앞서가면서 뭐라핸노.
용마래와 서까래를 밟으면서 잘 따라오라고 안 했나.
그거 밟으면 안 떨어진다고. 그런데 그 말을 안 듣고 밑에 아무것도 없는 데를 밟으니 떨어지지.
안 그렇나?”
팀장님 역시 눈이 풀린 상태에서 말을 이어갔습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도 그날 팀장님이 앞서가면서 한 말이 그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마루와 서까래, 지붕의 중심이 되는 뼈대와 그 주위를 받치는 뼈대 목재였습니다.
“걱정하지 마라. 이번 일로 기죽을 거 없다. 누구나 이 바닥에 들어오면 죽을 고비 서너 번씩은 다 넘기니께.
이번에 한 번 지나갔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여기 있는 동료들이 널 죽게 안 놔둘끼다. 그러니 저번 일이 무섭더라도 내만 믿고, 여기 있는 이 동료들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 그러니 저번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한잔해라!”
저는 팀장님이 따라주는 몬도가네식 장어 쓸개주를 다시 한잔 들이켰습니다.
타고난 소방관 스타일에다 호탕함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도 마음 한구석은 이렇게 따뜻한 사내였습니다.
그 회식 이후로 저는 그날의 일을 잊고 다시 소방차에 올랐습니다.
힘들고 위험한 순간이라도 믿고 따라갈 팀장님과 날 도와줄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은 잊지 않았습니다.
혼자라면 힘들고 위험하겠지만, 그들과 함께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힘을 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어언 소방서 생활 23년 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오늘같이 볕이 좋은 날이면 몇 년 전에 퇴직하신 팀장님 생각이 납니다. 팀장님을 모시고 그때 갔던 장어집에 찾아가 함께 장어 쓸개주를 한잔하며 지나간 이야기들을 꺼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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