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eran's talk _ #1_정은애 소방관
Veteran's talk
소방관을 위해, 소방관이 말하다
센터장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시점은 2019년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전라북도 익산소방서 인화 119안전센터 센터장 정은애입니다. 올해로 35년차 소방서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구급대원인 강연희 소방경에게 주취자가 폭언과 폭행을 가한 뒤, 강연희 소방경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결국 순직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제게는 ‘소방’에 관해 많이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소방관이 겪는 PTSD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보통 어떤 증상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나요?
저희 소방대원들은 항상 급박하게, 현장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이 출동합니다. 어떤 험한 상황이 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뚫고 가야 해요. 현장에 도착하면 문을 열기 전이 가장 두렵죠. 사체가 훼손된 시신이나 부패한 시신, 동물에 의해 훼손되거나 아픈 상태로 돌아가신 분의 시신과 같이 다양한 모습을 목격합니다.
어떻게 보면 온전한 형태의 시신을 보는 게 가장 다행이라고 볼 수 있어요.
늘 그런 것들을 보니까
괜찮지 않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데,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사건들을 경험한 직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나요?
아직은 그런 게 없어요. 최근 들어 상담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다녀온 뒤에 혼자서 삭히고 넘어가요. 우리 조직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분위기도 그렇잖아요. 약한 것은 못난 것으로 취급되는 분위기가 밑바탕에 있어요. 힘들다거나 괴롭다는 얘기하는 사람에 대해서 힐난하는 분위기 때문에 힘들다는 소리를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려운 거죠.
PTSD 증상이 나타났을 때 조직 내에서는 인식이 어떤지, 또 어떤 도움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감정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수준의 대응은 아직까진 없어요. 최근에 순직자보다 자살자가 더 많다는 통계가 나왔잖아요. 그런 통계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아주 힘들 때 도움을 받아라.’, ‘협약된 신경정신과나 상담센터에 가서 도움을 받아라.’라고 얘기를 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건 극히 일부에 국한되어 있는 거죠. 이를테면 힘듦의 강도를 1에서 10까지 구분한다고 했을 때, 10의 강도에 달하면 도움을 받으라는 의미인 거지, 3~4나 5~6 정도의 진행상태라면 대처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는 거죠. 10까지의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대응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10까지의 강도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완화 시켜줄 장치가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완화 시켜줄 장치가 전무합니다.
실제로 상담사나 전문정신건강의를 찾아가서 상담하거나 만족한 직원의 사례도 있나요?
저는 몇백 명 중에서 스스로 상담사를 찾아간 사람을 딱 한 명 봤어요. 제가 권유한 많은 직원은 마지못해 전문상담사를 찾아가서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가면 도움을 받는 사례가 많이 있어요. 그렇지만 거기까지 가기가 참 힘이 듭니다.
직원들이 하는 말은
‘거기까지 안 가도 돼요’
아직까진 낙인효과가 있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스스로 찾아가기가 힘든 겁니다.
외국 같은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참혹한 현장을 보게 되면 의무적으로 가고, 가지 않은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줘요. 일상화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니까 가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그런 제도가 오래되지 않기도 했고, 갔다 온 사람들에게 “그렇게 힘들었어?”라고 말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나쁜 사람보다 약간 부족한 사람을 더 비난하는 분위기죠. 팔이 부러졌다거나 피가 나는 것과 같이 눈에 보이는 외상이라면 누구나 병원에 갈 거예요. 그런데 심리적으로 아픈 건 마음속에 피가 철철 나지만 보이지 않잖아요. 우리 사회는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봐줄 수 있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소방관을 위한 트라우마 완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일반 대중의 시선으로 바라봤을 때 소방관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강하다는 이미지가 강하죠.
그래서 충분히 일련의 사건을 겪더라도 주변의 도움만 있다면 쉽게 이겨내고 다시 소방 생활을 정상적으로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 완화 장치가 지금 전혀 없어요. 물론 어쩌다 한 번이라면 힘든 일을 보고 겪은 뒤에 회복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저희 일의 특성상, 그런 일을 자주 보고 맞닥뜨립니다.
그런 만큼 그 후에 발생하는 증상들을 완화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지금의 형편에서 ‘나 힘들어요’라고 이야기하면 지휘부도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결국 외면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어떻게 다시 얘기하겠어요? 한 번이나 두 번은 얘기해도, 3번은 얘기하기 힘들어요. 결국 나머지는 혼자 감수하는 부분인 거예요. 최근에 소방관 자살률이 높아지니까 ‘그렇게 심각해지기 전에 정 힘들면 전문가를 찾아가라’고 말하기 시작하는 거지, 그 단계 이전까지는 생각을 못 하는 거죠.
더군다나 가족들도 겪는 어려운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이 힘들어하는데, 왜 힘들어하는지는 모르잖아요. 감정적인 부분은 결국 옆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이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가족들의 심리상태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회복이나 예방에 신경 써야 할까요?
소방관은 현장에서 인명구조를 해야 합니다. 국민의 재산 피해를 예방하고, 경감하고, 또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을 하지요. 그런데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급박하고, 긴박하고, 매번 상황이 달라서 예측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현장에 나가면 복합상황판단 능력이 필요해요. 국민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데 우리도 죽으면 안 되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우리는 중간 지점에서 고민하고 선택을 해야 합니다. 그것도 몇 초 안 되는 빠른 시간 안에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을 하는 거죠.
심리상태가 안정되어야만,
우리도 죽지 않고
국민의 재산이나 인명을 구조하는 일도
할 수 있는 거예요.
소방관의 안전이 곧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소방관이 안전해야 사람들을 안정적으로 구할 수 있고, 소방관이 안전해야 다음번 현장에도 들어갑니다. 소방관이 한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어떤 불안을 겪었을 때, 그 트라우마를 제대로 완화하지 않으면 다음 현장에서 위험을 감수하기 어려워할 수도 있어요.
지금 1년에 한 번 실시하는 마음건강 전수조사나 상담의 실효성이 충분하다고 보시나요?
아직 부족하다고 봅니다. 현재 소방관을 전담하는 상담원이 없어요. 잠깐 와서 문제가 있는지 물어보고, 없다고 하면 그냥 넘어가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죠. 상담을 하면 직원들과 공감대 형성이 되어야 비로소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을 텐데 공감대 형성이 힘든 분위기죠. 보통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일이니까, 그 얘기를 꺼낼 수 있을 만큼 우리 일에 대한 깊은 애정이나 넓은 공감대가 있다거나, 우리 사정을 좀 더 귀 기울여줄 수 있는 상황이 갖춰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 기대를 하고 막상 상담사 선생님을 만나고 나면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에요’ 하고 실망하며 돌아오는 거죠.
그래서 소방관에게 전념해주는 상담사가 있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현재는 지역별 편차가 심하고, 부족한 상황이죠. 여건이 되면 얘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게 안 돼서 안타깝습니다. 상담사 선생님들에게 좀 더 깊이 공감해주십사 하고 완곡하게 얘기해보기도 했고, 상담사 선생님을 파견하는 상담소 쪽에도 직접 얘기해보기도 했어요. 그게 또 사람마다 다르고, 결정하는 사람들도 다르다는 걸 깨달았어요. 결국 그만큼 애정이 없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상담과 관련된 문제의 ‘익명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익명성을 아직도 강조한다는 게 안타깝죠. 공무원 사회에서 심리상담을 얘기하는 것은 특이한 일로 치부되었어요. 2007년~2008년도, 소방에 처음으로 심리 관련 용어가 등장했는데 우리 직원 때문이 아니었어요. 재난 피해자에게 심리상담지원을 하면서 심리 용어를 쓰기 시작한 거예요. 그러니까, 내부적인 소방 공무원에게 한 게 아니라는 말이죠. 그만큼 직원 심리상담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지는 정말 얼마 안 됐어요. 그런 상황에서 심리상담을 편하게 받으라고 얘기를 꺼내기도 어렵고,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지도 못하는 거예요.
특히 심리상담에 대한 명을 내릴 수 있는 지휘자들은 현장 부서에 있지만, 정작 후유증을 겪는 사람들은 현장 대원이거든요. 가령 주취자들이 있는 현장에서는 폭행이나 폭언은 물론 심하면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들이 얘기하지 않아요. 굉장히 기분 나빠하면서도 얘기를 꺼내려고 하지 않아요.
몸이 아플 정도로 힘들지만, 이야기한 후 돌아올 눈총이나 못난 취급이 더 무서운 거예요.
그래서 익명성이 중요한 거고요.
어려움에 대한 도움을
편하게 요청할 수 있는 장치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소방관이 고립되지 않고,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게끔 하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현장의 참혹함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생기면 혼자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고립감, 시스템에 대한 개선을 원해도 개선되지 않는 부분, 거기서 오는 무력감이 소방관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고 간다고 생각해요. 시스템이 개선되면 좋겠습니다만, 개선이 되지 않으면 그 과부하를 고스란히 받는 사람들은 현장 대원들이거든요. 그럴 때 완화하는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전까지는 그 완화 프로그램에 대해서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가 최근 들어 조금씩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아직 많이 미흡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익명성이 보장된 시스템이 있다면 상당히 도움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소방관 가족들이 소방관의 업무 혹은 스트레스에 대해서 정보 측면으로 전달 받는 시스템이 있나요?
아직은 없어요. 가족에 대해서도 심리적인 지원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오랜 세월 동안 가족과 함께 직원들을 만났어요. 우리 직원들이 가족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아파하는 부분들도 있고, 가족은 직원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예요. 그 중간 지점에서 맞닿는 지점이 중요하죠. ‘지금이 위로가 필요한 때인가? 아니면 혼자 있는 게 필요한 때인가?’ 그 타이밍을 알고 싶은데 알 수가 없어요. 그런 부분 때문에 심리상담을 전문가가 해줬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제안을 한 적도 있어요.
가족들에게도 심리 지원이 반드시 필요해요. 사람이 힘들 때 가장 큰 지지가 되는 존재는 같은 처지의 동료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가족입니다. 힘든 상황을 겪고 있을 때, 위로가 필요한지 아니면 혼자 두고 지켜봐 주는 게 좋은지를 누군가가 알고 이해해주면 좋잖아요.
소방관은 강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이 인식 때문에 소방관 자신도 힘든 부분을 외부에 말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소방관에게는 강한 부분만큼이나 유연한 부분도 반드시 필요해요. 강함과 유연함이 두루 갖춰져 있어야 현장에 나가서 복합적인 상황 판단을 할 수 있어요. 때에 따라서는 여러 사람 중 선택적으로 살릴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거든요. 저희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또 그게 마음처럼 되지 않는 순간을 맞닥뜨리기도 하죠. 그런 상황에서, ‘한두 사람이라도 죽을 뻔한 사람을 살렸다는 것에 만족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살린 사람보다는 실패 사례, 안 좋은 사례를 연구하고 분석하지, 성공 사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만큼 ‘하나라도 더 살려서 다행이다’라기 보다는 ‘한 명을 살리지 못해서 안타깝다’라는 마음이 들죠. 사회 분위기가 실패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쪽에 가깝잖아요. 만약 드러내더라도 ‘뭘 잘했다고’하고 비난하는 분위기가 강하니까 이런 마음을 쉽게 내비치지 못하죠. 우리 자체도 몇십 년을 그렇게 살아왔어요. 나의 약점이자 조직의 약점을 드러내는 일은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위험할 수밖에 없죠.
트라우마를 겪은 동료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의 당사자는 어려운 감정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어요. 그런 경우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유연한 분위기가 있다면 보다 완화하기 쉽겠죠. 전문가가 ‘너만 그런 게 아니야, 세상 사는 건 다 그럴 수 있어’라고 답해주면 더 완화하기 쉽겠죠.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완화될 수 있는 분위기 형성이 지금으로써는 무엇보다 중요해요. 보이지 않는 사회적 지지와 전문가의 심리적인 개입은 꼭 필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심리적인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말을 꺼내기 힘들었어요. 지휘부에서 꺼리거나 눈총을 주는 분위기도 한몫했을 테고, 본인 자신의 자기검열도 브레이크를 걸었을 거예요. 혹시 자신이 나약한 건 아닌지에 대해 고민하고, 인정하지 않아요. 힘든 부분이 0에서부터 10까지 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10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조금씩 깊어지는 거죠. 정작 아주 큰 일을 겪으면 바로 개입하는데,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서서히 누적되는 심리적인 어려움은 커지는 게 표가 안 나요. 그러다 한순간에 빵 터지는 거죠. 이해 못 할 행동을 한다거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타납니다.
감정은 합리적이기보다 즉각적인 거예요. 그런 부분을 해결해줄 수 있는 전문가의 도움을 찾아야 합니다. 가령 우리가 감기에 걸렸을 때 병원에 가잖아요. 이때 감기로 병원에 가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죠. 심리적으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Veteran's talk는?
소방관 익명 마음상담 플랫폼 hearO의 베테랑 소방관 릴레이 인터뷰입니다.
베테랑 소방관은 대한민국의 안전과 함께 자신과 동료의 안전도 함께 지켜왔습니다.
그들이 바라본 현장 소방관의 트라우마 경험과 극복과정, 개선 방향을 동료와 후배 그리고 국민들에게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