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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평안하길...

by 누구니

대학 새내기 시절, 연극동아리 활동을 함께했던 선배가 올여름부터 급성백혈병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선한 웃음으로 항상 후배들을 살갑게 챙겨줬던 선배였다. 100여명의 선후배들이 그의 입원비 마련을 위해 천만원을 모금하며 그의 쾌유를 빌었다.

그러던 와중에...선배가 운명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부고장 속의 그는 20대의 싱그러움이 50대의 너그러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금방이라도 말을 건넬 것 같은 모습으로...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선배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익산까지 왕복8시간의 운전해야 했다.

‘그 먼 길을 나 혼자 갈 수 있을까?’

오늘은 출산휴가를 떠나는 여직원과 갑작스런 퇴사를 통보한 남자직원을 위해 점심 식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산 자와 죽은 자 사이...누구와의 이별에 더 충실해야 할 것인가...’

어제밤부터 이런 고민을 반복하다가 결국 나는 익산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오전 내내 직원들의 쉴새 없는 의사결정 요청에 시계는 어느새 점심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급기야 하늘까지 흐려지며 비까지 뿌려대고 있었다.

도저히 혼자서 먼 길을 운전할 자신이 없어졌다.

결국 나는 회사를 떠나는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4년간 함께 했던 여직원과 갑작스러운 퇴사로 나의 뒷목을 잡게했던 남직원,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업무를 나눠지게 된 직원들...그들과 같이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그동안의 서운함은 내려놓고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마음 속으로는 그 선배를 위해 깊은 애도를 표했다.

그가 무엇을 믿건 천국 입성을 소망하고, 남은 가족들이 평안 속에서 삶을 잘 꾸려갈 수 있기를 바랬다.


어제 오늘 갑작스럽게 두 가지 이별을 경험하며...산 자와 죽은 자 그들 모두가 어디에 있건...각자가 새로운 자리에서 누구보다 평안하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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