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조금 불편할 뿐...

by 누구니


며칠 전, 운전 기사 업무는 다시 맡지 않겠다며 출장 후 주먹을 내려쳤던 그 남자 직원이 나를 조용히 직원휴게실로 불렀다.

“팀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침부터 불 꺼진 휴게실에서 다른 직원과 속삭이고 있는 그의 모습이 영 찜찜하더니 결국 올 게 온 모양이었다.

“왜? 어디 가게?”

장난반 두려움반으로 응수하는 나에게 그는 애써 기쁜 기색을 감추며 퇴사 의사를 밝혔다. 입사 전부터 오랫동안 준비했던 공공공기관에 몇 번의 고비를 마신 끝에 오늘 합격 소식을 듣게 됐다고 했다.


정녕 지방에서 문화예술을 직업으로 하는 게 그렇게 매력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지자체 산하기관의 근로자 대우가 못마땅한 것인지...회사가 설립된 이래 지난 7년간 신입사원들은 1년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이직을 했다.

그 또한 입사한 지 겨우 1년...그 시간 동안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을 키우기보다는 목표로 한 공공기관에 이직하기 위해 시험 준비만 한 듯 했다.


당장 이번 주 안에 그나마 경력이 긴 여직원이 출산 휴가를 떠나기로 되어 있는데...갑작스런 그의 퇴사 소식에 현기증이 몰려왔다.

거기다 다음 주에는 전 팀원이 다 붙어서 진행해야 하는 큰 행사도 예정되어 있어 더 난감한 지경이었다. 6명의 팀원 중에 그나마 1년이면 경험이 많은 축에 속했다.

지금껏 6시 칼퇴에 영혼 없는 표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그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갔다. 지금껏 불성실한 업무 태도는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에 이르자 내 안에서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잠시 사무실을 벗어나 한참 동안 회사 주위를 배회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팀원들에게 회의를 소집했다.

육아휴직 대체 근무자의 편입으로 업무 분장 회의를 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다시 업무 재조정을 해야 한다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현실을 받아 들이기로 했다.

‘그래도 문화예술에 애정이 없는 직원들을 애써 설득해 가며 힘든 프로젝트를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경험은 없어도 열정이 있는 신입 직원들과 마음을 맞추는게 더 낫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위로하며 업무를 조정했다.

“그래 조금 불편할 뿐...전혀 속상한 일이 아니야”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나는 다시 책상에 앉아 힘 있게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