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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싼타가 그렇지 뭐!

by 누구니

지난 주에 함께 박람회를 준비하는 문화활동가의 작업실을 들렀다가 폐업한 스터디카페의 의자를 얻어온 적이 있다.

그 분이 다니던 개척교회에서 목회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갑작스럽게 목사님이 암으로 돌아가시게 되면서 문을 닫게 되었다고 했다.

상태가 좋은 의자들과 책상, 스탠드조명 등 쓸만한 집기가 꽤 많았다.

"목사님이 손수 만들고 애정하시던 물건들이라 팔 수도 없고, 그냥 필요한 분들에게 나눔하려구요"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인들에게 연락을 려 필요한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

몇몇 지인들이 의자들과 조명스탠드 등을 부탁해왔다.

마침 오늘 그 근처에 약속이 있어 카페에 들러 요청한 물건들을 낑낑거리며 차에 챙겨 실었다.

내 차가 터질 만큼 차곡차곡 실었다.

카페에서 다음 출장지까지는 40km 거리 였다.

'내가 일하는 곳이 정말 넓구나'

조수석까지 실은 의자 탓에 사이드미러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으로 조심스럽게 고속도로를 지나왔다.

그래도 이 물건들을 요긴하게 쓸 사람들을 생각하니 내가 산타할아버지라도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꽉찬 차를 비우기 위해 나는 퇴근 길에 맨먼저 지인A에게 직접 의자를 갖다 주겠다고 연락을 했다.

A는 집주소와 아파트 동,호수를 알려주며 지하엘리베이터 앞에 놔둬달라고 부탁했다.


거리에는 금요일 저녁이라 많은 차들로 막혔고, 주소만 찍고 가는 초행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1시간쯤 걸려 나는 처음 가 본 A의 아파트 주차장에 겨우 도착했다. 지인이 알려준 아파트 동을 찾아 지하 엘리베이터 앞까지 의자를 내려놓고 인증샷을 보냈다.


"말씀하신 곳에 의자 두개를 갖다놓았습니다. 바퀴는 잘 닦아서 쓰세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 의자 깨끗한데요...감사합니다."

그녀의 빠른 답장에 나는 의아함을 느꼈다.

'설마... 집 안에 있는데 나와보지도 않고 엘리베이터 앞까지 놓고 가라고 한건가?

마치 택배기사가 된 듯 공동현관문을 열고 힘들게 의자를 배달한 과정이 조금 허탈하게 느껴졌다.


배달을 끝낸 후 지하주차장에서 허기를 달래기 위해 간단히 요기를 하고 곧장 학원이 끝난 아들을 데리러 갔다.

아들을 보자마자 나는 섭섭한 마음을 털어내기 위해 오늘 싼타할아버지처럼 나눔 선물을 차에 싣고 었던 일을 얘기했다.

내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아들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 그럼 지금 내가 루돌프 탄거네!"


그러고 보니 나는 오늘 하루 하얀색 루돌프를 타고 싼타를 한 것이었다.

'그래 싼타가 그렇지 뭐..

싼타가 언제 선물 받는 사람 얼굴보고 고맙다는 얘기듣고 왔다고?...'

맞다.

내가 아는 상상 속 싼타할아버지는 선물 받는 아이들의 얼굴은 보지도 않고...몰래 선물만 놓고 나왔었다.

마치 오늘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의 한마디로 서운했던 기분을 싹 지우고 기분 좋게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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