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의 분노로 좀처럼 잠들지 못하던 나는 결국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밤새 뒤척이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 나는, 이른 아침 식사와 함께 글쓰기를 시작했다.
어제는 한 해의 마무리 행사로 80여 명의 주민을 한자리에 모시고, 그간의 성과를 되돌아보는 날이었다. 행사는 6시 30분 시작이었다. 그러나 5시 40분에 도착한 대표는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며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생활문화사업이었지만, 선거철을 맞아 공식적으로 주민들과의 인사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며 구청장을 시상자로 세운 것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요 며칠 사이, 갑작스러운 의전 행사로 주객이 전도되었다. 행사는 점점 한 사람을 위한 자리가 되었고, 급기야 어제는 테이블별 명단과 인사 동선 안내도까지 요구하며 닦달이 이어졌다.
식전 공연을 위한 합창단 리허설이 끝난 뒤, 겨우 자리를 잡아 설치해 두었던 높은 마이크는 어느새 무대 한켠으로 치워져 있었다.
“겨우 위치를 잡았는데… 마이크가 치워져 있네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음향감독과, 마이크 높이를 낮추라며 소리를 지르는 대표이사 사이를 오가다 나는 용역사 대표에게 조용히 마이크만 낮춰 달라 부탁했다.
문제는 전자현수막이었다. 무대 앞에 있어야 할 전자현수막이 띄워져 있지 않고 영상 스크린만 내려와있었다. 담당자에게 물으니 6시 이후에는 영상 스크린을 오르 내릴 수 없어 그냥 화면으로 현수막을 대체하려고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얼마 전 결혼과 신혼여행으로 자리를 비웠던 차석 실무자. 시간에 쫓긴 탓인지 사전 보고 없이 누락된 일들이 적지 않았던 터였다.
며칠째 몇 번의 실강이를 하던 나는 더 이상 입을 대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대표이사는 전자현수막이 없다며 닦달하기 시작했다. 영상 스크린을 움직일 수 없어서 그렇다고 설명하자, 그는 해당 과 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향하던 실무자를 다시 현장으로 불러냈다.
“구청장님 가실 때까지만이라도 여기 있으면서 조정 좀 해주세요.”
오늘 행사의 모든 초점은 그의 목줄을 쥐고 있는 그 분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일면식도 없는 말단 공무원이 그 요청에 응할 리 없었다. 그는 간단한 조정법만 알려주고 현장을 떠났다. 정작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지만, 나는 ‘월급쟁이의 설움’이라며 묵묵히 따라가고 있었다.
결국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대표는 막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실무자를 향해서는 “○○차장, 빨리빨리 걸어야지. 바빠 죽겠는데 그렇게 느리면 되나?”라고 소리쳤고, 급기야 나를 향해서도 고함을 질렀다.
“자신이 없으면 행사를 시작하지를 말지. 도대체 준비도 없이 왜 한다고 했냐?”
꾹 참고 있던 나는 말했다.
“대표님… 아직 행사는 시작 안 했습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행사 한 시간 전까지 인테리어 소품을 조립하던 용역사 대표, 갑작스러운 퇴사와 출산으로 비어 버린 두 자리, 그나마 들어온 한 달짜리 신입사원, 네 달 전에 바뀐 말단 직원 두 명, 달콤한 신혼에 빠져 있는 차석까지.
현장 도우미를 충원하라는 나의 지시에 ‘업무를 아는 사람이 직접 하는 게 낫다’며 버티던 직원들을, 전체 행사 진행을 맡은 나는 마이크를 든 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정리를 시켰다.
그리고 직원들에게는 조용히 말했다.
아직 행사는 시작도 안했다고...대표님 말씀에 멘탈이 흔들리면 안된다며...
얼굴에 미소를 장착한 나는 구청장의 등장과 함께 식전 공연을 시작시켰다.
생활문화동호회의 성악공연과 번잡한 시상식이었지만 1부 행사는 무사히 막을 내렸다. 정작 구청장님은 기분이 괜찮았는지...축사 중에 두번이나 나의 이름을 언급하고는 일을 잘한다며 칭찬을 하시고는 유유히 사라지셨다.
드디어 자유를 얻은 2부 행사... 관내외 발제자들의 발표와 함께 주민들과 지난 한 해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느새 행사 시작 전의 속상함을 지우고, 주민들의 자신감 넘치는 무용담에 웃고 있었다.
문제는 행사 마무리를 위해 대표이사에게 마이크를 넘겼을 때였다. “오늘 내가 5시 40분에 행사장에 왔는데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더라구요. 00 팀장이 그럴 사람이 아닌데… 왜 이렇게 정리가 안 돼 있는지, 내가 이래저래 성질을 좀 냈습니다. 사실 문화가 밤낮없이, 또 주말마다 근무를 해야 해서 많이 힘듭니더. 그래서 팀원들도 많이 나가고….”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행사를 진행해 오던 나는 그 말에 분노와 함께 눈물이 차올랐다. 왜 굳이, 80명의 주민들과 서울과 지역에서 모신 외빈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해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끝까지 정신을 부여잡고 전 팀원을 무대 앞으로 불러 인사를 시키고, 행사를 마무리했다.
행사장을 떠나는 많은 주민들이 애처로운 눈빛으로 수고했다며 인사를 건넸다. 서울과 울산에서 모신 두 분의 발제자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오늘 같은 날 소주라도 해야하는데...라는 말을 남겼고,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었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알 리 없는 직원들은 대표이사의 마지막 말에만 분노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팀원들을 바라보며 대표의 말과 행동을 곱씹다가, 분노 속에서 잠을 청했다. 그리고 결국 이른 새벽 다시 깨고 말았다.
도대체 오늘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그리고 고향에서 남은 세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그 질문만이 이른 새벽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