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관내 출장을 나간 A직원에게서 문자가 왔다.
“팀장님… 카페 사장님께서 팀장님 드리라고 뱅쇼를 챙겨주셨어요.
최대한 6시 안에 갈게요. 혹시 쪼끔 늦더라도… 조금만 기다려주실 수 있을까요?”
이 짧은 문자 하나로, 어제 소통회의에서 내가 겪었던 상황이 그 책방카페 사장님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뱅쇼는 ‘위로’로 읽혔고, 어제 수모를 당한 팀장에게 그 위로를 전하고픈 A직원의 따뜻한 마음까지 전해졌다.
사무실로 돌아온 그녀는, 나에게 유난히 친절했던 그 카페 사장님의 말을 차분히 전했다.
“대표님이랑 팀장님 사이가 그렇게 안 좋은 줄 몰랐다시며... 어제 팀장님, 많이 힘들어 보이시더라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직원의 손에 레몬청 두 통을 쥐여주며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이건 대표님 건데… 팀장님께 여쭤보고 전달하지 말라고 하시면 팀원들끼리 드세요.”
어제의 그 장면이 80명의 주민들에게 어떻게 보였는지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 내 안에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애써 누르려했지만, 지난 3년간 은연중에 반복되었던 사내 성폭력과 그로 인해 정신과를 다니며 버텨야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지난 6월, 아버지의 장례를 마치고 복귀한 나는 전 직원 월례회의에서 위로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한 뒤 팀 업무 보고를 이어갔다. 그때 대표는 나를 향해 “시간도 없는데 빨리빨리 하라”라고 날카롭게 다그쳤다.
회의가 끝난 후, 옆에 있던 다른 팀장은 “김 팀장이 대표님께 뭐 찍힌 거 있어요?”라고 말할 정도였다.
이후 얼마간 반복된 그의 부당한 업무 지시와 막말은,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 속에서 일상을 버텨내던 나를 충분히 주저앉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주저앉은 나는 3년간 쌓여온 그의 행적을 9장의 진정서로 정리했다.
사내 성폭력과 부당한 업무 지시에 대한 인권 상담을 위해 여러 곳에 전화를 걸었다. 그중 한 상담사는 이렇게 말했다.
“거기 공공기관 아니에요? 중간관리자면 성폭력 대응 교육받지 않아요? 그런데 왜 지금까지 가만히 계셨어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책망에, 나는 말문이 막혀 전화를 끊어버렸다.
다행히 여러 차례의 통화 끝에, 비로소 성실히 응대해 주는 지역 성폭력 상담소를 찾을 수 있었다.
나의 진정서를 읽은 소장은 이 정도면 당장 대표의 직을 내려놓게 할 수 있다며 변호사 연결을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를 아는 학교 동기 경찰과 의원들은 하나같이 내 커리어에 치명적일 수 있다며 ‘팀장님 손에 직접 피 묻히지 말고 때를 기다리라’ 고만 말했다. 나는 그 대안으로 정신과를 찾았다. 의사는 상태를 점검한 뒤, 지금 상황은 약을 먹으며 버텨야 이길 수 있다며 4주 치 약을 처방했다. 하지만 약에 손을 대기가 쉽지 않았다. 한 번 시작하면 영원히 의존하게 될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몇 개월을 버티며 고민했다. 대의를 위해 참는 것이 옳은지, 살신성인의 자세로 싸워 이겨내는 것이 옳은지. 결국 나는 경영팀장에게 현재의 심리 상태를 공유하며, 최대한 일을 키우지 않기 위한 나의 소심한 요구를 전했다.
대표를 마주치지 않도록 팀 주변에 파티션을 설치해 줄 것. 그리고 대표와의 직접 대면이 적은 외부 시설로 발령을 내줄 것. 하지만, 12월이면 대표의 임기 만료가 예정돼 있었기에, 부서 이동이 여의치 않으면 몇 개월만 더 지금의 업무를 해보겠다고 했다.
경영팀장은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다음 날 바로 파티션을 설치했다. 나는 육아기 단축근무를 통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고, 신앙의 힘과 ‘12월이면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전, 그의 연임이 확정되었다. 규정을 바꾼 덕에 그는 마음만 먹으면 정년 없이 대표직을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이런 와중에 어제의 공개적인 인권 모독을 다시 겪으며, 나는 묻어두었던 9장의 진정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지금의 주민들을 위한 문화사업의 지속성을 위해... 모두를 위한 사명감으로 계속 견뎌내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대표를 자른 팀장’이라는 낙인이 찍히더라도, 후회 없이 그를 끌어내리는 게 맞을까?
그리고 이 중 어떤 길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길일까?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나는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