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동안의 휴가를 보내며, ‘나를 놓아보는 실험’을 했다.
무엇인가에 쫓기듯 살아온 강박에서 잠시 벗어나, 내가 느끼는 감정과 기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했다. 혼자 있을 땐 이유 없이 화가 치밀기도 했고, 운전을 하다 문득 서러운 눈물이 흘러내리기도 했다. 교회에서 성탄절 예배를 보다가 청년들의 해맑은 몸짓을 보며 또 눈물이 고였다.
휴가 첫날, 목사님을 만나 나의 고민을 모두 쏟아놓았다. 만나기 전 미리 글로 내용을 전했기에, 목사님은 안타까운 얼굴로 이렇게 물으셨다.
“아이고… 이런 험한 일을 오랫동안 겪으시고, 어떻게 참아내셨어요?”
나는 담담한 척 쓴웃음을 짓고는 지난 시간을 이야기했다. 그렇게 말을 이어가다 보니, 드디어 내가 무엇에 분노하고 있었는지가 또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대표가 지난 세월 동안 저질러온 수많은 행위들 중에서도, 나를 가장 분노케 한 것은 그가 차곡차곡 쌓아 올린 폭력의 질서였다.
성추행이 밑바탕이 되었고, 그 위로 때때로 행해진 갑질과 인격 모독이 층층이 쌓였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는, 얼마전 나의 대외적 자존감을 무너뜨린 공개적인 모욕이 있었다.
결국 나는 그를 더 이상 ‘사람’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 상남자의 반대인 ‘하남자’라는 농담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무가치한 존재로 정의했다.
그 후, 나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소중한 자녀이다. 나의 존엄을 흔드는 일에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즉각 대응한다.그런 대응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보호막을 준비한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 어려움을 헤쳐 나갈 길을 보여 달라고 기도한다.
이제 나는 순간의 감정이나 타인의 시선에 짓눌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때문에 나를 괴롭히지 않기로 했다.
나는 ‘나로서 온전히 사는 일’에 집중하려 한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임을 잊지 않기 위해, 시간과 돈과 에너지의 30%는 언제나 나 자신을 위해 남겨두기로 했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내일 다시 회사를 향할 용기가 생겼다.
나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존엄성으로 무장한 잔다르크다.
더 이상 나를 수많은 '경우의 수'에 가둬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만드신 소중한 그의 자녀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