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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보라 Dec 07. 2024

#23. 이혼의 부작용

이혼 후 10년 #23

"피디님! 올여름에 프랑스 출장 갈 수 있어요?"

국제 공연 초청이나 협업이 많았던 센터 업무 특성상 우리 팀원들은 해외출장을 갈 일이 많았다.

해외의 아트마켓에 나가서 한 해 동안 우리가 직접 제작한 국내 공연 작품들을 해외 유통하기도 하고, 내년도에 우리 센터에서 올릴 해외 공연 초청이나 해외공연팀들과의 협업 가능성을 모색하기도 했다.


나는 예전 회사에서 꽤 오랜 기간 동안 해외공연을 진행온 경험이 있어 자연스럽게 국제 공연 협업이나 유통 등의 업무를 맡게 되었다. 물론 이 또한 내가 전적으로 아이들을 양육하고 있었다면 쌓아가기 어려운 커리어였을 것이다. 독박 육아를 자처한 전남편 덕분에 일을 계속할 수 있음에 때때로 감사했다. 


올여름에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아비뇽페스티벌에 상사를 모시고 가는 미션을 맡게 되었다.  

나의 여자 상사는 국내 유명 대학의 교수로 재직 중, 그 일이 지루하셨는지... 우리 회사 예술 총감독의 개념으로 들어오시게 되었다. 성격은 호탕하시고, 아이디어가 수시로 떠오르는 분이라 덕분에, 회사 카톡방을 시간을 가리지 않고 울리게 하시는 분이었다. 문제는... 교수가 아닌 직원으로 회사에서 일하시는 것은 처음이라는 것! 


그런 상사와 나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아비뇽에 간다는 건 설렘과 동시에 큰 걱정거리였다.  

프랑스 아비뇽은 평소에는 인구가 10만 명도 되지 않는 작은 도시이지만, 매년 여름철에는 3주간 열리는 아비뇽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수십만 명의 관광객들로 가득 차는 곳이다. 유서 깊은 아비뇽 시내의 주요 공연장과 야외무대에서 올려지는 공식페스티벌 작품을 보기 위해서는 오래전부터 티켓예매를 해야 했다. 불행히도 나는 늦은 출장 확정으로 인해 겨우 개막공연 티켓 1장만 구할 수 있었다.  

  

드디어 아비뇽페스티벌의 첫날이 왔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상사보다 일찍 도착해 주요 공연장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PD! 나... 지금 앰뷸런스 타고 병원으로 가고 있어! 아까 기차역에 내려서 걷다가 맨홀에 빠져서 다리를 다쳤어"

"네? 아이고 괜찮으세요? 어디 병원으로 가고 계세요?" 

"올 것까진 없어" 아직 목소리는 힘이 있어 보이시고, 농담도 하셔서 심각한 사고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럼, 오늘 저녁 개막공연은 어떻게 할까요?"

"공연을 보는 건 어려울 것 같으니까... 대신 가서 봐"


오전엔 휴식을 취하겠며 따로 움직이겠다고 말한 상사가 갑자기 앰뷸런스에 실려가다니...

그녀의 SNS를 살펴보니... 그사이 다리를 다친 후 앰뷸런스를 타고 이송되어 가는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서 올려놓으시고는 한국에 있는 지인들에게 좋아요! 받으며 위로를 받고 계신 듯했다.  

나는 한편으로 '많이 아프지 않으셔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녀의 병원에 가지 않고 개막공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제는 그다음! 공연을 겨우 보고 나서 상사의 귀가를 돕기 위해 연락을 했는데 영 닿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호텔로 급하게 이동했다. 

호텔에도 그녀는 없었고, 한참 후 늦은 밤이 되어서야 목발을 짚은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나를 본 그녀는 화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 이대로는 프랑스에 못 있으니까 내일 당장 한국으로 들어가는 비행 일정으로 바꿔줘"

아까는 여유 있게 SNS에서 구급차 이동을 리얼리티로 찍더니... 갑작스레 한국으로 가신다는 게 납득되지 않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아까 다쳤다고 했을 때 달려가지 않아서 그러신 건가?"

그녀의 의중을 알고자 애썼지만, 그녀의 화만 돋울 뿐 좀처럼 속시원히 밝히지 않았다. 

한국의 직장동료들에게 이 난감을 카톡으로 전달하니... 한결 같이 모두 다 나의 안부를 걱정해 주었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다른 상사로부터  그녀가 한국에 가겠다고 떼를 쓰는 이유를 전해 듣게 되었다. 

첫째 내가 병원으로 달려오지 않고, 개막공연의 참석 가능 여부를 물은 것

둘째 내가 결국 병원으로 오지 않고 공연장으로 가서 개막공연을 본 것


이 사건을 통해 내가 겪어왔던 많은 일들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언제나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나...엄청난 열정을 쏟아 누구보다 좋은 성과를 내곤 했지만 외로울 때도 많았다.  

'신경 쓸 거 없다'는 상사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고 출장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계획대로만 일정을 소화하려고 한 내가 잘못이었을까?   


형식적인 사람들의 말 뒤에 숨겨진 진심을 헤어리지 못한 채, 항상 주어진 의무와 목표에만 충실하려고 애쓴 건 아닌지...내 인생의 다른 문제들을 함께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성취에 너무 열중한 나머지 정작 주변 사람들의 마음은 살펴볼 생각조차 하지 않은 건 아닌지?'

결국 그날 밤의 내 고민은 이혼으로 또 연결되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첫 결혼이 이혼으로 귀결된 것이 아닌가?'하며 또 자책하면서 말이다. 

어김없이 그날밤도...인생의 새로운 문제와 내 이혼를 연결 짓는 "이혼의 부작용"을 또 다시 경험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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