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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보라 Dec 05. 2024

#22. 차라리 외로운 아웃사이더가 낫다.

이혼 후 10년 #22

"우리 예준이도 드디어 초등학생이 되었네! 삼촌이 너무 축하해!!"

어느덧 세월이 흘러 나도 드디어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었다.  

첫째 아들의 입학날! 입학식 시간에 맞춰 학교에 도착했다.  

전남편은 전시어머니와 함께 올 것 같았다. 도저히 혼자 갈 용기가 나지 않은 나는 큰오빠에게 동행을 부탁했다.  


외삼촌과 할머니, 엄마, 아빠가 대거 참석한 입학식에서 아들은 누구에게 먼저 아는 척을 해야 할지 곤란한 표정이었다.

시어머니와 어색한 눈인사를 나누고, 오밀조밀 모여있는 초등학생들의 입학식을 감동적으로 지켜봤다.


드디어 입학사진을 남길 시간...

엄마와 아빠 사이의 어색한 부위기를 감지한 아들은 누구와 먼저 사진을 찍어야 할지 두 번째 눈치를 살폈다.


그런 아들이 안쓰러워... 전날 밤늦게까지 준비한 커다란 초콜릿 목걸이를 걸어주고 후다닥 인증샷을 찍은 후 아들을 할머니 품으로 보냈다.


그다음부터는 나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어머! 예준이 어머님은 일하시나 봐요?"

"네..."

엉겁결에 처음으로 참석한 엄마들 모임에서 내 옷차림을 유심히 살펴 엄마가 말을 걸어왔다.

"다음 주에 우리 아들 생일 파티를 학교 앞에 있는 OO키즈카페에서 하는데 예준이도 올 수 있으면 같이 오세요!"


2주일마다 주어진 아이들과의 49시간... 잠시라도 애들과 떨어지는 게 아쉬워서 아들친구 생일파티에 딸아이를 데리고 갔다.


엄마들끼리 모이면 하는 뻔한 얘기들... 아이들 학원얘기, 남편얘기, 시댁얘기

어느 주제 하나 맘 편히 낄 수 있는 게 없었다.  

유일한 돌파구는 함께 온 딸아이...

놀아 줄 친구가 없던 딸아이를 챙기는 척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중학생 때부터 연극을 해왔지만... 매번 엄마들 모임에 갈 때마다 고민이 되었던 것은...

'어떻게 하면 이혼한 가정인 게 티가 나지 않을까?' 였다.   

학교 주위에 살고 있는 엄마들은 거의 매주 아이들끼리 같이 놀게 하면서 교류를 하는 듯했다.  


"예준이 엄마도 다음 주에 꼭 와요! "

"실은... 제가 다른 도시에서 일하고 있어서요. 주말마다 오는 거라서 그때는 참석이 어려울 것 같아요..."

항상 총대를 메는 듯 앞장서는 엄마가 친절히 나의 일정까지 챙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날은 도저히 공연 일정 때문에 참석할 수가 없어 나의 근무지를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 그럼 애들은 누가 봐요?"부터 시작해서

"그 멀리서 여기까지 주말마다 다니시려면 너무 힘드시겠다"

"어쩐지... 그래서 쉬지도 않고 딸내미를 계속 쫓아다니셨구나~" 등등

그때부터 기러기 엄마에 대한 과도한 염려가 시작되었다.


내가 답하기 어려워하는 가장 곤혹스러운 질문은 '애들 아빠는 뭐해요?'이다.

더불어 내가 부재 중일 때 '아이들은 누가 돌보는지?'도 그들의 관심사였다.  

백수 아빠라고 말할 수도 없고... 이혼했다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으니...

말끝을 흐리다가 아이들과 놀아주기를 자처하며 자리를 떠나는 게 상책이었다.

아들의 즐거운 학교 생활을 생각하면, 모임에 안 갈 수도 없고, 주양육자인 애들 아빠는 전혀 낄 생각도 하지 않으니 더욱 난감할 뿐이었다.  


이혼 초창기에는 친구들에게 아무 생각 없이 이혼 얘기를 밝힌 적이 있었다.

처음 질문은 '어쩌다가?'로 시작해서 나의 힘들었던 결혼 생활을 밝히면...

여러 명이 내  얘기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내 편을 들어주는 척 칼질하기가 일쑤였다.

결국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위로하며 헤어졌다.  

그러고 나면, 저... 지하 끝까지 떨어져 있는 내 자존감을 다시 주워오느라 며칠을 허비해야 했다.

 

하물며 친구 사이도 그랬는데 처음 보는 엄마들에게 섣불리 말했다간 우리 아이들까지 결손가정에서 자라나는 듯한 선입관을 갖게 할까 두려웠다.  

그러느니 차라리 내가 외로운 '아웃사이더'가 되는 편이 훨씬 더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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