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이직이 유일한 답으로 보일 때
이혼 후 10년 #24
결국 1박 2일에 걸친 내 진심 어린 사죄 덕분인지 당장 내일 비행기를 타고 가겠다던 상사는 목발을 짚은 채 아비뇽 일정을 끝까지 함께했다.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아비뇽...하지만 상사와의 추억때문인지, 지금도 프랑스만 떠올리면 머리를 흔들어 그때의 기억을 금새 지워버리고 싶어진다.
그녀와 우여곡절 많았던 해외 출장을 겨우 마무리하고 돌아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전화가 왔다.
"피디님... 다음 달 1일 자로 문화사업팀으로 발령이 나셨어요. 놀라실까 봐 미리 알려드려요."
"네?? 제가요?? 왜요?"
"그건... 저도... 잘 몰라요...
아마도 내년부터 그 팀에서 야외축제를 하기로 해서 PD님을 보내시는 것 같아요."
지금껏 입사이래 이 팀에서 얼마나 많은 공연을 제작하고 노하우를 쌓아왔는데 갑자기 하루아침에 축제를 뚝 떼서 문화사업으로 옮겨가면서 나까지 발령내는 건 납득할 수 없었다. 그것도 나 외에는 문화예술분야 사람이 없는 팀에서 나 홀로 야외축제를 하게 된다니...
하필이면 나의 직속상사는 그날 휴가를 내었다. 나몰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나는 실례를 무릎 쓰고 주말 아침에 커피숍에서 면담 요청을 했다.
"혹시 프랑스 일 때문에 발령이 난 건가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요?"
"인사는 그분이 관할하시는 건데..."
계속되는 나의 집요한 질문에 어쩔 수 없는 답을 하셨다.
"아마도 아비뇽에서 있었던 일이 영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역시나... 그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웃는 얼굴로 마지막에는 화해의 선물까지 사주시며 헤어졌지만 뒤끝은 작렬이었다.
그녀가 한국으로 가겠다고 난리친 1박 2일 동안...
내 생에 가장 큰 상처였던 남편과의 결혼생활까지 되새김질하며 내 성격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찾아내려 애썼다.
그녀를 이해하기 위해 내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보고 자책했던 지난 시간이 너무 억울했다.
역시나 그녀는 상식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그 일의 결론은 납득할 수 없는 보복으로 끝났다.
이동한 부서에서 견딜 수 없이 끔찍한 일은 나에게 성희롱 발언을 서슴치 않았던 그 이상한 남자가 내 직속상사가 된다는 것이었다. 계약과 회계부서에서 일하다가 갑작스레 문화사업을 맡게 된 상사의 무능력함은 차치하더라도 그와 보내야 하는 근무시간 자체가 걱정되었다.
사무실을 이동하는 날...
나의 부사수와 팀원들은 내 컴퓨터와 집기들을 옮겨주며 이별의 선물까지 챙겨주었다. 문화예술에 대한 나름의 신념과 열정으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입사 동기들...지금껏 동고동락하며 마음으로 의지해 온 동료들과 헤어지는 게 정말 서운했다.
새로 함께 일하게 된 팀원들은 순수하고 착했지만, 그저 공공기관이라서 입사를 했을 뿐, 문화나 예술에 특별히 조예가 깊거나 뜻이 있지는 않아 보였다. 유일한 전문가였던 나는 축제를 총괄하며, 팀원들의 업무분장과 업무 관리까지 해야 했다.
실제 사업의 총괄은 내가 하고 있었지만, 직속 상사는 내가 만든 문서를 보고할 때마다 빨간펜을 꺼내들고는 시원하게 그어대며 계속 태클을 걸어댔다.
사석에서 단 한마디도 섞고 싶지 않은 그였기에 직속 상사로 그의 곤조를 받아내자니...당장이라도 회사를 떼려 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힘겹고 외로운 수 개월을 버텨낸 끝에 나는 겨우 여름 축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2주일에 한 번은 고향을 오가며 아이들을 2박 3일 동안 만났다. 일요일 밤에는 심야 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해 월요일 아침이면 어김없이 출근했다.
'도대체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어차피 더이상 내가 하고 싶었던 일도 아닌데... 이럴 거면 고향에서 아무 일이나 하며, 아이들이라도 가까이서 돌보는 게 낫겠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런 생각을 했다.
비정상적인 상사와 의미 없는 업무...공감하기 어려운 나이 어린 팀원들을 견뎌내는 시간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화가 풀렸는지...1년도 되지 않아 나는 다시 본래의 팀으로 복귀를 했다.
얼마 후 그녀는 임기를 다 채우지도 않고, 갑자기 다시 학교로 복귀해버렸다.
전우애 넘쳤던 팀원들과 다시 만나 하고 싶은 공연을 하게 되었지만 내 마음은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단 하나 계속 떠오르는 생각은
' 어떻게 하면 이곳을 떠날 수 있을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