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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보라 Dec 11. 2024

#25.내 외로움의 흔적을 지우는 법

이혼 후 10년 #25


아아들의 여름, 겨울 방학 때는 아이들과 일주일의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며칠 동안 헤어지지 않고 아이들과 여러 밤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생각에 방학이 가까워지면 내 마음도 들떴다.  

방학이 되면 좀 멀더라도, 아이들을 내가 홀로 살던 낯선 도시로 데리고 와서 짧은 휴가를 보냈다.  

평소에는 혼자 적적하게 살던 내 원룸에서 아이들과 장난치며 잠을 자고, 밥을 해먹기도 하고, 내가 온 종일 일하는 아트센터에도 데리고 가서 사무실과 공연장을 보여줬다.

 

"엄마는 예서와 예준이랑 떨어져 있을 때 매일 여기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거야"

평소에 말로만 해주었던 회사 이모와 삼촌들을 실제로 만나게 해 주면, 평일엔 잘 볼 수 없던 엄마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알고 나를 조금이나마 이해해 줄 것 같았다.

동시에 항상 혼자여서 외로웠던 내 방과 회사에서... 그리고 바쁘게 오고갔던 출퇴근 길을 아이들과 함께 웃고, 걸으며, 사진으로 추억을 남기면, 나 혼자 있게 될 시간들이 덜 외로울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아이들과 보내는 낯선 도시에서의 방학을 통해 내 외로움의 흔적들을 지우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어쩔 없이 이혼을 했고, 이곳에 와서 외롭게 혼자 살고 있다. 하지만 나에겐 그 누구보다 소중한 사랑하는 아이가 있어서 행복하다'

아무도 내게 물어오지 않았지만, 어쩌면 내 온 몸으로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365일 볼거리가 가득한 이 도시에서...항상 아쉬웠던 순간은...내가 보는 멋진 경험을  함게 나눌 가족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힘들게 만든 공연이 드디어 올라갈 때도 기꺼이 축하하러 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방학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도시 곳곳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문화예술을 경험하게 했다. 나 혼자서는 용기가 없어 가지 못했던 관광지도 가보고, 우리 회사에서 동료들이 애써 만든 문화 행사들도 함께 보며 추억을 쌓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 나의 허점함을 억지로 채우려 할수록, 이직에 대한 내 열망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지금 가장 예쁜 유년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 곁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러려면 내가 꼭 원하는 일은 아니더라도 고향집 근처의 안정적인 직장으로 옮겨야 했다.

틈만 나면 일자리를 찾아보기도 하고, 인근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은근히 이직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매일 빠뜨리지 않고 했던 건, 밤마다 확언 일기를 쓰는 것이었다.

우연히 만나게 된 책을 통해 끌어당김의 법칙을 알게 되었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매일 그것이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상상하고, 매일 글로 남겨라. '

교회에서 자주 들었던 일상의 감사를 매일 느끼며 행복해 할 때 긍정적인 일들이 끌어당겨지고, 목표로 한 일들도 가까워진다는 것이었다.  


물론 불평거리가 가득했던 일상에서 일상의 감사를 느끼는 건 쉽진 않았다.

교회에 가면 그나마 마음이 평온해졌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세상을 향해 항상 날이 서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그래도 최대한 내가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하며, 미래의 꿈을 매일 밤 글로 써내려 갔다.

매일 밤 잠자리에서 한 페이지씩 나의 꿈과 목표를 글로 남기면서 이직에 대한 내 목표를 매일 상기시켰다.

  

그렇게  확언 노트 두 권을 거의 채워갈 때즈음 드디어 원서를 쓸 만한 곳은 나타났다.  

고향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문화예술회관에서 중간급의 공연기획자를 찾는 것이었다.  

공연장의 규모도 제법 컸고, 인구 수도 많아 나름 높은 수준의 공연들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가장 좋은 것은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거나 너무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지 1시간 안에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는 어린시절부터 항상 동경하던 서울생활을 더이상 할 수 없는 것 같아 서글픈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더이상 올라갈 일이 없겠구나'

어렵게 공부해서 서울로 진학하고...힘든 직장생활과 파탄으로 이어진 결혼생활까지 15년을 넘게 내 삶을 이어오던 서울과는 더욱 멀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지금 내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고쳐먹기 위해 애썼다.  

'이제 나도 바다와 맞닿은 이 집에서 내가 원하던 문화예술을 하면서 외롭지 않게 살 수 있겠구나!'

쉽지는 않았지만, 매일 밤 확인일기를 쓰면서 그곳에서의 내 미래를 상상해보았다.

그렇게 자세히 그려보면 그려볼 수록 합격에 대한 확신은 더욱 커져갔다.  

함께 일하다가 그 도시로 이직한 예전 직장동료에게 조언도 구하고, 면접을 보러 간 김에 아예 새로 이사갈 집까지 알아보았다.

마치 내 상상이 내일이라도 이루어질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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