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이혼이 준 선물?
이혼 후 10년 #27
박실장님은 배려심이 아주 많은 분이었다.
그가 처음 본 내 모습은 문화예술에 빠진 워커홀릭 기획자로, 당연히 결혼하지 않은 싱글이라고 생각했단다.
함께 떠났던 출장길, 음악박물관에서 활달한 내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눈길이 갔고... 함께 이동하던 차 안에서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며 더욱 끌렸다고 했다.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알아채려고 하는 찰나... 함께 뮤지컬을 보러 갔던 공연장에서 어깨너머로 내 휴대폰에 떠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보고 조금 놀랬다고 한다.
사고가 난 후 문병 온 나를 다시 보고... 함께 시작하고픈 마음에 용기를 내었다고 했다.
그와 조심스럽게 시작한 연애는 나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박실장님이 일방적으로 많은 것을 감내하며 이해해줘야 하는 상황이 많았다.
특히, 남들에게서 뒷말 듣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나였기에 직장 동료를 포함한 남들 앞에서도 내가 누군가와 만난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크지 않은 도시에서 제한된 시간과 장소에서 남들의 눈을 피해 가며 연애하는 것 자체가 일종의 스트레스였다.
무엇보다 평소의 나는 평범한 워커홀릭 싱글로 살았지만, 2주일에 한 번은 누구보다도 치열한 엄마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했기에, 이런 나의 모습이 그에게 때때로 낯설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박실장님이 병원 생활을 했던 6개월의 시간 동안에는 서로 많이 의지하며 관계를 이어갔다.
이제 막 서로 알아가기로 한 새로운 연인들에게 병원생활이 대부분이었던 시간들은 관계를 발전시키기에는 제약이 많았다. 함께 나눌 수 있는 다양한 경험도 없었기에 추억도 많이 쌓지는 못했다.
박실장님은 주어진 상황 안에서 최대한 나의 모든 상황을 이해하며 최선을 다하려고 애를 쓴 것 같았다.
나 또한 새로운 만남에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의 배려와 따뜻한 마음을 받아들이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결국 그 사이 지쳐버린 우리는 박실장님이 퇴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조용히 이별을 선택했다.
그냥... 내 마음은 아직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복잡한 가정 상황과 마음 졸이는 육아, 촉각을 다투는 직장, 나만의 의지로는 컨트롤하기 어려운 스케줄... 이런 많은 문제들과 연애를 병행하기엔 내가 너무 힘들었다. 박실장님은 마음이 매우 넓어 모든 것을 내 상황에 최대한 맞춰주려고 했지만... 남들처럼 온전히 연애를 즐길 여유가 없었던 나에겐 그 시간들이 사치였다.
아이들과 함께 있지 못하는 시간만큼은 더욱 가치 있게... 그리고 아이들이 알아도 부끄럽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강박이 나에겐 있었다.
이제 갑자기 만난 그에게 이런 내 마음의 짐을 함께 나눠달라고 하기엔 아직 염치가 없었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이혼한 싱글이었지만...
때때로 내 마음 한구석에 나도 모르게 '이혼녀'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는 것만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서 결국 처음부터 손발을 맞춰가며 어려운 문제를 풀기보다는 그 모든 상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책임자 한 명이 온전히 그 모든 짐을 감수하는 게 낫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그가 퇴원하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그와의 어려웠던 연애를 끝냈다.
그리고 그 짧은 연애의 추억을 떨쳐버리고자 또다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전 남편과의 이혼을 결심하고 제주도를 찾았던 것처럼...
나는 그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복잡했던 내 마음을 조금씩 정리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