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10년 #38
수습기간으로 일했던 2년 동안, 나는 주어진 업무와 촉각을 다투는 상사의 지시를 충실히 해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동시에 ‘이혼’이라는 내 개인사가 들키지 않도록 인사기록카드에 전남편 이름을 적어내기도 했다.
꼬리의 꼬리를 무는 대화를 하다가 나의 이혼 사실이 드러날까 봐 팀원들과의 사적인 대화도 최소화해 가며... 최대한 어떤 구설수에도 오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 모든 내 행동들이 나중에 나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2년 만에 올린 거대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난 다음 날, 힘겹게 출근을 한 나에게 「인사발령」 통지 공문이 날아들었다.
입사한 지 정확히 2년 만에... 정규직 발령과 함께 부서 이동 발령을 함께 받은 것이었다.
“팀장님! 시간 되시면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내가 공문을 확인하길 기다렸다는 듯이 몇 분 후 인사팀장은 사내 쪽지로 면담을 요청해 왔다.
이유인즉슨, 익명의 한 직원이 나를 ‘직장 내 갑질’로 신고해 부서 이동 조치를 선제적으로 했다는 것이었다.
‘주어진 업무를 성공적으로 해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직장 내 갑질이라니?’
갑작스러운 인사발령에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는데 갑질 신고라니... 너무나도 황당했다.
알고 보니... 얼마 전 결혼 준비를 핑계로 퇴사했던 팀원이 퇴사 후 갑질 신고를 한 것이었다.
내가 알던 그녀는 여대를 다니던 학창 시절에 여자 선배들로부터 단체 폭력을 당하고 난 뒤, 오랜 기간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때때로 약을 복용하는터라 순간 감정의 기복이 컸었다. 때때로 전화 벨소리나 사람들의 목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죽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직원이었다.
다른 문화기관에서 이쁨 받는 계약직으로 1년 이상 일했던 그녀는 우리 회사에 정규직으로 채용되고 난 후 업무를 많이 힘들어했었다. 축제 현장에서 직접 발로 뛰는 일만 했었던 그녀는 행정이나 기획 업무를 어려워했고, 함께 협의한 내용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누락하기 일쑤였다. 약속된 기한에 맞춰 결과물을 내기보다는... 여러 여직원들과 어울려 다니며 사내 소문의 진원지 역할에 충실한 듯했다.
처음엔 나도 영문을 모른 채 그녀의 산만함을 에둘러 지적하며, 업무에 집중할 것을 요구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욱 심각해져 가는 그녀의 업무 공백을 견디다 못해, 다른 팀원들에게 업무를 넘기겠다고 으름장까지 놓았었다. 이내 그녀는 눈물로 사죄하며, 대학교 시절 본인이 당했던 학교폭력으로 인해 정신상태가 온전치 못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내가 다른 직원들을 향해 다그치는 소리만 들어도 심장 박동이 너무 심해져 업무를 집중할 수가 없어서 진행이 더뎠다며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하소연하기도 했었다.
그랬던 그녀는 입사 1년 만에 심리 치료와 결혼 준비를 사유로 퇴사를 하고는... 몇 주일 후 내 등에 비수를 꽂은 것이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는데도, 나는 그저 보이는 대로... 보이는 만큼만 믿고 있었다는 사실을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매일 쫓기듯 처리해야 하는 업무들과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아이디어들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나는 팀원들을 일정에 맞춰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물이 잘 나오면 팀원들의 공을 치하하기보다는 곧바로 다음 프로젝트를 해내는 데 집중했다. 그런 나를 본 상사들은 형식적으로 칭찬하면서도, 다른 팀장들이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나에게 떠넘기기 일쑤였다.
그 결과, 나는 원치 않는 과중한 업무를 떠맡으며 타 부서장들과 팀원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았고, 동시에 부하 직원들의 눈총까지 감내해야 했다.
지금껏 나 스스로에게 갑질 한번 못해봤는데... 갑작스러운 타인의 갑질신고로... 내 인생을 휘두르던 공식적인 갑들의 횡포가 잠시나마 멈추게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를 그녀의 소심한 복수 덕분에... 나는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를 뒤로 하고. 반항기만 가득 충전한 상태로 새로운 팀으로 이동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