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10년 #38
“너, 사는 데가 어디냐?”
오랜만에 전시어머니의 전화번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이들과 함께 보낸 주말을 마무리하며 저녁 준비로 분주했던 나는, 갑작스러운 전시어머니의 전화에 당황했다. ‘왜 갑자기? 우리 집이 왜 궁금하신 거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동과 호수를 알려드렸다.
한참 뒤, 힘겹게 딸기와 샤인머스캣을 든 시어머니를 마주했다.
알려준 아파트를 찾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고 하시며, 며칠 만에 만나는 할머니를 아이들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집을 쭈욱 둘러보신 시어머니는 무심한 듯 한마디를 던지셨다.
“예쁘게 해 놓고 사네.”
딱히 만날 이유도, 반길 이유가 없었던 전시어머니... 나는 왜 갑자기 방문하셨는지가 더 궁금했다.
하지만, 어색한 짧은 인사를 나눈 후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이혼 후에 가끔 마주친 시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나의 부재로 인해 어린 손자, 손녀를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원망스러우신 듯...
아이들을 데리러 갈 때마다 마주쳤던 시어머니의 표정은 항상 좋지 않았다.
일머리 없는 아들을 대신해서 다섯 살 손자와 두 돌이 겨우 지난 손녀를 키우시느라 힘들어 죽겠다는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사셨다.
전남편과 면접 교섭 일정이 잘 조정되지 않거나 난데없는 폭언 문자를 받게 되면 나는 그의 유일한 집안 어른인 시어머니에게 연락을 했었다.
“요새는 내 말도 안 들어서 나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때마다 시어머니는 냉소적인 답변을 하셨다.
일 년에 한 번씩... 아주 가끔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뭔가 큰 계획이 있는 것처럼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기다려 봐라”
시댁에는 내가 결혼 전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부터 인근에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재개발 소문이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마지막 알 박기로 버티신 덕에 시어머니는 좋은 가격에 집을 팔아 시내 중심가의 상가 건물로 이사를 가셨다.
이혼 후 단 한 번도 돈 버는 일을 하지 않던 아들 걱정 때문인지, 아니면 어린 손자들 등록금이 걱정되서인지, 무릎이 안 좋으시던 어머니는 엘리베이터가 없어도 위치가 좋은 상가 건물을 골라 이사 가셨다.
"여러 군데 다녀봤는데 여기가 엘리베이터는 없어도 위치가 제일 좋았어"
오랜만에 환한 얼굴로 내가 묻지도 않은 자랑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어느 날 저녁, 평소 나에게 문자 외에는 연락을 하지 않던 전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엄마가 계단을 못 올라가셔서, 오늘 그 집에서 주무셔야 되겠어"
'이 무슨 난데없이 무슨 말인지...’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던 나는 일단, 오늘 밤만 계시면 된다는 얘기를 듣고 급한 대로 시어머니가 주무실 수 있는 잠자리를 준비했다.
알고 보니 대충 상황은 이랬다.
시어머니는 얼마 전 맹장 수술을 받고 겨우 퇴원하셨는데, 일주일 전부터 별다른 이유도 없이 다리가 부풀어 올라 다시 재입원을 했다고 했다.
그 병원에서 갖가지 검사를 해도 원인을 찾지 못해, 결국 내일 대학 병원으로 옮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리가 심하게 부어서 집 계단을 도저히 오를 수 없어 엘리베이터가 있는 우리 집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정말 오랜만에 시어머니와 어색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부은 다리가 매우 고통스러우신 듯 밤새 끙끙 앓으셨다.
“아이고... 아이고.... 어머니요.... 어머니요... 내가 죽겠습니다!”
고통 속에서도 시어머니는 끊임없이 또 다른 고통을 부를 것 같은 주문을 외우셨다.
나 또한 그 소리에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새벽 무렵, 시어머니가 다급한 목소리로 화장실에 가고 싶다며 나를 부르셨다.
부축하려 했지만, 시어머니는 도저히 몸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결국, 새벽에 급히 전화를 받고 달려온 전남편이 어머니를 모시고 응급실로 향했다.
우리 집 앞에서 시어머니는 힘겹게 아들의 차에 오르셨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시어머니를 뵐 수 없었다.
그 밤은 시어머니와 함께했던 마지막이자, 불편한 하룻밤으로... 평생 내 마음에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