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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ris Nov 08. 2015

사춘기와 대립하기

또는 사춘기와 친해지기

13세, 여자, 키 164, 체중 50~53kg(추정)

언제든 싸울 태세가 되어있는 눈빛과 어떤 어른이든 5분 안에 열 받게 할 수 있는 말투 보유.

몸의 성장 속도를 마음이 따라가지 못함


나도 겪었지만 도무지 납득 안 되는 사춘기 기술을 시전 중인 우리 집 맏이다.  준비할 새도 없이 닦친듯하다.

어느 날 갑자기 내 아이는 다른 공기를 마시고 다른 피가 흐르는 나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그대로인데 나를 대하는 내 아이가 너무 달라져 있었다.

반항기, 질풍노도의 시기로 대변되는 사춘기!   사전에는 어떻게 명기되어 있는지 궁금해졌다.


사춘기(思春期)
육체적ㆍ정신적으로 성인이 되는 시기. 성호르몬의 분비가 증가하여 이차 성징(性徵)이 나타나며, 생식 기능이 완성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이성(異性)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춘정(春情)을 느끼게 된다. 청년 초기로 보통 15~20세를 이른다. 사춘기를 맞다   <네이버 국어사전>

육체는 확실히 성인이 되어 가고 있는 듯 하나 정신은 글쎄.   부모가 들여다 볼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헷갈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춘정(春情)"이라...

실로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구나.  국어 사전에서는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 까?


춘정(春情) [명사]  
1. 남녀 간의 정욕
2. 봄의 정취
유의어 : 성욕, 춘심, 색정
<네이버 국어사전>

그래 반항만 한다면 부모들이 그렇게 난리를 치지는 않을 터였다.  성적 호기심이 발동하여 사고를 칠까 봐 그 난리를 치는 거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몸이 어른이 되는 시기니 당연히 성에 관심이 갈 밖에.

내 몸이 변하는 데 어떻게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있겠는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이야기다. 그렇다 해도 "성욕, 춘심, 색정" 이런 단어는 좀 무시무시하다.   그리고, 사전에 명기된 나이는 좀 고쳐야 맞겠다.  15~20세는 아주 옛날 옛적 이야기다.  요즘의 사춘기는 보수적으로 잡더라도 12세부터가 적당하다.

사전을 찾고 찬찬히 의미를 짚어보니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심신의 변화는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하다.  "몸과 마음의 변화로 인해 외부로 발현되는 말과 행동이 이전과는 많이 다를 수 있겠구나" 정도가 내가 엄마로서 베풀 수 있는 이해의 폭이다. 그렇다 해도 막상 그런 상황과 맞닥뜨리다 보면 감정 제어가 쉽지 않다.



"너 그렇게 말하지 말래?"


"내가 어떻게 말했는데..."


"버릇없이 따지듯이"


"난 그렇게 말한 적 없는데..."


(그 말투 조차도 반항 끝장 실은 투며, 눈빛은 레이저급이다)


"지금도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


"엄마가 그렇게 듣는 거야"


(이쯤 되면, 나의 감정브레이크는 오작동 시작이다)


"너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설마 선생님 한 테도 그렇게 얘기하는 건 아니지?"


"아~진짜... 엄마가 이상한 거야.  "


(나간다,  자기 방문을 닫는다. '쾅'!!! 이쯤 되면 나도 제어 불능)


"너 나와!!!  똑똑... 나와!!!"


"싫은데..."


"안 나와!!!"


(마지못해 나온다)


"앉아.  너 이런 식으로 맘대로 할 거면 네가 알아서 살아.  경제적인 지원도 끊을 테니 그것도 네가 알아서 해."


(아! 말하면서도 말이  안 되는걸 알지만 이미 내가 하는 말에 논리는 없다)


"경제적 인건 내가 아직 미성년 자니까 부모가 해주는 게 마땅하지."


(맞는 말이다. 근데 지친다.  이쯤 되면 녹다운이다)


"그만하자"



나는 나대로 애는 애대로 각자모드 돌입이다.

이렇게 일전을 치르고 나면 나는 우선 아이를 피해 나간다.  집에 있으면 여운처럼 남은 잔소리가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혼자 되어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픽'소리 나게 웃기다.   이성의 논리는 완벽하게 결여된 의미 없는 신경전에 다름없다.  물론 쌍방 모두 소득도 전혀 없다.  

난 정말 13살 아이의 경제적 지원을 끊을 만큼 대범한(?) 부모인가?  아니다.  

유치하지만 겁주기다.  해서는 안 되는 훈육방법 중 하나지만 많은 부모들이 알면서도 으레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근데 안타깝게도 13살 아이는 안다.  겁주기용 발언이라는 것도 자기 부모는 절대 그럴 수 없다는 것도.

둘 다 처음부터 상대의 패를 알고 시작한 싸움이라는 얘기다.   짜여진 시나리오로도 싸움이 되는 게 이 부모 자식 간의 싸움이다.


사춘기 자녀 때문에 스트레스라는 주위 선배들 이야기나, "중2" 가 무서워서 북한이 선공을 못한다는 우스개 소리는 그냥 웃자고 하는 이야기 인 줄 알았다.  나와는 무관할 거라고 생각하며 흘려 들었던 사춘기병의 실체를 마주하고 보니 쉬운 일이 아니겠구나 절감한다.  어느 한쪽은 힘을 빼야 무리 없이 지나갈 텐데.   세상 모든 게 살짝 삐딱하게 보일 피 끓는 십대 자녀보다는 부모 쪽이 쉽겠지?  그래, 삼일 참고 사일째 터지더라도 정상적인 호르몬 상태인 내가 베푸는 수밖에.  생각만 해도 기운이 빠지지만 길게 봤을 때 그게 최선책인 듯 싶다.

'내 질풍노도의 시기에는 그래도 엄마가 도움이  됐었구나'라고 회상할 수 있게.

금기하고 막아서기 보다는 인정하고 겪어내게 함으로써 사고의 자립을 도울 수 있는 부모이고 싶다.


살아보니 성공한 삶의 모법답안은 없다.  기성세대들이 일반적인 잣대로 매겨놓은 기준이 있을뿐.  

모두가 서는 그 줄에서 빠져도 상관없다.  

다만 모든 결정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어야 한다.

열린부모이고 싶다.


이리 다짐하고도 같은 패턴으로 싸우고, 4일에 한 번은 '버럭' 소리지를 것이다.


"야~ 문열어!!!! 너 이리 안 나와!!!"


제일 내 맘대로 하고 싶은 게 자식인데 제일 내 맘대로 안 되는 게 자식이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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