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사가 나를 보자마자 '아이고.. 많이 우울하신 것 같네요.'라고 했고,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물론 마음이 힘든 사람이 상담소를 가겠지만 깔끔한 화장에 정돈된 옷차림을 하고 잔잔한 미소를 띠며 상담실 문을 열었는데 그런 말을 들어서 뜻밖이었다.
심리상담을 받기 전에 수백 번도 망설였다. 당일에도 취소하고 싶었다. 그 이유는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상담을 받는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말 죽도록 힘든 사람이 큰 사연을 가지고 상담을 받는 거라고 생각했다. 괜찮을 때도 있고, 너무 힘들 때도 있기에 힘들 때는 상담을 받아봐야겠다 생각했다가도 좀 괜찮아지면 '그래 말자.' 싶었다.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가기 싫기 마련인데, 당장 피가 철철 흐르는 것도 아니니 바쁜 일상에 미루고 미뤄왔던 것 같다. 심리상담을 받아볼까 말까 계속 고민하고 있다면, 정말 심리상담이 필요한 사람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상담소에 들어가자마자 직감했다. 진작 왔어야 했다는 걸.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치과를 가고 피부과를 가고 미용실을 가고 내외적으로 나를 부지런히도 가꿔왔음에도 내 마음의 힘듦은 외면해 왔다. 그저 가끔 울고 자주 슬프고 주기적으로 우울감에 빠졌으며 이내 삶의 의욕과 흥미를 많이 잃어버렸을 때쯤 상담소에 찾아갔다. 물론 상담이 당장 많은 것을 해결해 주지 않는다. 그래도 그 시작점에는 서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줄곧 의구심이 들었다. 부모님이 나에게 특별한 가해를 한 것도 아니고, 필요한 것들을 다 해주었다. 살면서 크고 작은 힘든 일들이 있었지만 중대한 트라우마가 생길 만큼 힘든 일을 겪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왜 나는 평생을 우울할까. 나의 타고난 기질인가, 정신과 약을 먹으며 치료하면 해결될까.
하지만 상담사는 부모님이 나를 몇십 년간 정서적으로 방임했다고 말했다. 그 진실을 남의 입으로 처음으로 들었고 꽤 충격을 받았다. 정서적인 상호작용이 없는 가정이 몇 프로 정도가 될 것 같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50% 정도는 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상담사는 10% 정도라고.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가 우울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께 내가 힘들었던 부분을 털어놨고 미안하다는 말도 들었는데 여전히 괜찮지가 않다고 했다. 그러자 상담사가 이 외로움의 기간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고 몇십 년이라고 답했다.
상담사와의 대화를 통해 내가 몇 가지 잘못된 방식으로 나를 다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뭐든 걸 객관적인 사실로 이해해보려고 했다. 현실적인 상황이 안정되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안정적인 관계를 꾸려나가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다. 부모님 원망할 나이도 한참 지났으니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다 보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좋은 것을 사고 좋은 곳에 가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모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괜찮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윽고 어떤 것도 원하는 것이 없어질 줄은 몰랐다. 행복해질 줄 알고 부단히 여기저기 쫒다가 다 꽝이었다는 걸 깨닫고 아무 욕구가 없어진 기분이었다. 부모님이 나를 성적이나 번듯한 일자리 등 객관적인 조건으로만 나를 받아들이려 했듯이 나 또한 객관적인 조건이 갖추어지면 행복할 거라 잘못 기대했던 것 같다. 앞으로 장기적인 상담을 해나가려고 한다. 이번 상담을 통해서 어느 정도 속이 시원했고, 우울한 나를 지겨워하는 것에서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