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_춘천 양식집 히로
요가를 수련하는 사람을 요기라고 하고, 여성 수련자를 요기니라고 한다는데 어감이 너무 귀엽다. 여자 남자 나누는 거 옛날 스타일이지만, 여자 남자 나누는 것에 너무 민감해하는 것도 옛날 스타일인 것 같다. 그냥 여자인 나로서의 정체성이 좋고 당연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사람이 어떤 행동양식을 바꿀 때 정체성을 바꾸는 게 제일 결정적이라고 하는데 요가를 한 달 동안 수련하니 '요가하는 사람', '내 몸을 돌보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이 생긴 것이 제일 좋다.
요즘 제일 행복한 순간이 아침요가를 한 시간 하고 돌아와서 따뜻한 물로 정성 들여 샤워를 할 때. 10점 만점짜리 행복이 확실하게 쏟아진다. 이 행복이 좋아서 주말에도 혼자서 요가를 수련하려고 하는데 좀처럼 실천한 적이 없다. 내일 아침에는 해봐야지. 요가매트를 바닥에 깔아 두고, 그 위에 요가복을 올려두고 잘 예정이다. 왠지 방에서 이러고 자면 요가 귀신한테 가위눌린 것만 같은 기묘한 풍경이긴 하지만.

(다음날 아침 요가하기 성공)
운동을 꾸준히 나가다 보면 그곳의 NPC들을 알게 된다. 무척 조용한데 알고 보면 엄청 다정한 분, 시니컬하고 타투가 매력적인 분, 누구랑도 바로 수다가 가능한 사랑스러운 분. 그리고 나를 매일 요가원에 나오고 싶게 하는 에너지가 엄청난 요가선생님. 사람마다 방사하는 존재감과 에너지가 있다고 하는데 그 요가선생님은 강하고 너그럽고 따뜻하다. 나도 언젠가 그런 생명력이 넘치는 푸릇푸릇한 기운을 뿜고 싶다는 마음이 또 하나의 동기부여가 된다. 현재 나의 에너지랄까 주된 감정은 솔직히 새로운 직장에 입사를 앞둔 약간의 두려움, 휴직 중인 상황에 따른 약간의 지루함, 다 큰 성인이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오는 어려움과 갈등.. 이런 부정적인 에너지가 큰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이런 나와 스치는 사람들이 그다지 편안한 기운을 공유받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도 했다.
특히 안 되는 자세가 있는데 허벅지 뒤쪽 근육인 햄스트링이 매우 짧아서 견상자세(다운독)를 할 때 무릎이 어지간히 안 펴진다 나의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고 있노라면 흡사 기린이 깁스하고 삐그덕 대는 것 같다. 또 나는 기립성 저혈압과 미주신경성 실신이 있는 자율신경이 예민한 체질이라 머리가 아래나 뒤로 쏠리는 자세들은 쓰러질 것 같이 어지러워서 잘 못한다. 수업의 마지막 단계쯤에 물구나무를 응용한 자세들을 시도해 보라고 독려해 주는데 지금은 엄두가 안 나지만 언젠가 수련하다 보면 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모쪼록 내가 그만두지 않고 n달차 후기를 또 쓸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