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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 2

by 이운수

은수는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된 아이였다

난자 상태에서부터
가장 건강한 것을 골랐고
아내는 커피를 끊고
나는 담배를 꺾었다

엽산, DHA, 산모수첩
두툼한 보험 가입과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 신청서까지
은수는 오기도 전에
우리는 이미 은수의 일생을 설계했다

벽 모서리는 모두 라운딩 마감했고
전기코드는 다 가렸다
자외선, 미세먼지, 설탕, 텔레비전, 사람들
모든 위험은 출입을 통제했다

은수는
티 하나 없이 자랐다
넘어지지 않았고
울지도 않았다
젖은 기저귀도 말하지 못하게 했다

이유식은 항상 37.5도
책은 무조건 3개
매일 다른 장르로

그리고 은수가
열 살이 되었을 때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사람이 너무 많다고
눈을 감아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은수는

거울을 자주 봤다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크게 뜨며

괜찮은 얼굴을 연습했다

그러곤 가끔

자기 얼굴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어쩌다 친구가 웃어주면

그날은 두통이 없었다

은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교실을 빠져나왔다

나는 사표를 내고
아이 옆을 지켰다
아내는 책을 샀다
‘사회성 기르기’
‘마음 단단하게 만드는 대화법’
‘친구가 나를 싫어해요’

은수는
열두 살 생일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초는 아홉 개만 꽂았다
그리고
방문을 닫았다

은수는 이제
모든 걸 알고 있다
우리가 어떤 식으로
은수를 사랑했는지

나는 매일매일
살얼음을 걷는다
안전하게
절대로 깨지지 않게

우리는 은수를 지켜냈다

사람 많은 곳도

울음도

상처도

사랑도

끝내

살아보지 못하게 했다

참 잘했어 은수야

정말 대견하다

너무 기특하다

정말 착하다

정말 정말 사랑해

은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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