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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파이

by 이운수

둘째이자 큰딸 가은이가 한 손에 초코파이 상자를 들고 제게 다가왔어요.

“아빠, 이거 뭐라고 쓰여 있는 건지 알아?”

가은이의 작은 손가락은 상자에 적힌 한자, '情' 자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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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저는 속으로 생각했죠.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갔는데, 벌써 한자도 배우는구나. 대견하다, 우리 딸.’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글쎄, 아빠는 잘 모르겠는데?”



그러자 가은이,
입가에 살짝 웃음을 띠며,
“그것도 몰라?” 하는 표정을 지은 뒤,

아주 당당하게 외쳤습니다.












“아홉!”


한참을 실컷 웃었습니다.
가만 보니 아홉처럼 보이긴 하네요.

내심 기대했던 저도 웃기고, 그렇게 읽은 딸도 너무 귀여웠어요.


하지만 웃음도 잠시,
문득 오래전 제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저도 초등학교 저학년쯤이었을 겁니다.

그날은 치킨을 먹기로 한 날이었고,
저는 혼자 전화를 걸어 치킨을 시켰습니다.


당시엔 90년대를 풍미하던 ‘O서방 양념치킨’이 있었죠.

그 치킨집에 전화를 걸어,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거기... 총 서방 양념치킨이죠?”


"아니, 이 서방~"



한자 ‘李’가 ‘총’처럼 보였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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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이 떠오르자
마음속에서 조용히 중얼거렸습니다.

‘은수 심은 데, 은수 났구나...’


이변은 없었습니다.
'가은아, 미안하다. 너는 그냥 아빠 닮은 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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