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생각 7월호 원고 채택
(좋은생각 7월호, 35페이지에 소개)
저녁 식사 후 책상에 앉아있는 나에게 두 딸이 요란스럽게 달려왔다.
"아빠, 사과 먹어"
"아빠, 언니 거 말고 내 거 먹어!"
이럴 땐 누구의 것도 먼저 받아선 안 된다.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 숙련되지 않았지만,
포크 두 개를 동시에 잡는 고난도 스킬이 필요하다.
가뭄에 콩 나듯 세 아이가 동시에 달려올 때면 더욱 고급 스킬로,
동시에 집은 것처럼 보이게 손을 움직여야 한다.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나는 두 딸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포크를 들어 사과 두 쪽을 동시에 입에 넣는다.
"와~사과 너무 맛있다~ 우리 딸들이 주니까 더 맛있네!"
표정 연기까지 잊지 않는다.
아삭아삭 씹으며 최대한 밝고 행복한 얼굴을 연기해야 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아빠, 근데 내가 준 사과가 맛있어? 세하가 준 사과가 맛있어?"
이럴 때 "둘 다 맛있어"는 금지어다.
이 집 딸들은 그런 평범한 답변을 용납하지 않는다.
평소에 '6시 내 고향' 같은 TV 프로그램 리포터의 연기를 참고해 두는 이유다.
"가은아 아빠한테 사탕 줬어?"
"아니, 나 사과 줬잖아."
"아 진짜? 아빠는 사탕인 줄 알았네. 사탕처럼 너무 달콤해. 세상에서 먹어본 사과 중에 가장 달콤했어. 우리 가은이가 줘서 그런가 보다."
"그래?"
열 살 가은이는 만족한 것 같으면서도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돌아간다.
"아빠, 내 사과는?"
다음 타자는 막내 세하다.
(가은이가 방에 들어간 것을 확인한 후)
"우리 세하가 준 사과는 아빠가 태어나서 먹어본 사과 중에 최고로 맛있었어. 새콤하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해. 아빠가 마치 백설공주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지."
그리고 그 순간, 백설공주가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죽은 것처럼 기절하는 연기를 한다.
세 살 많은 언니보다 더 큰 반응을 원하는 일곱 살 막내 세하, 까르르 웃으며 만족한 얼굴로 돌아간다.
두 딸이 돌아가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현타.
다만 와이프가 못 들었길 바랄 뿐이다.
내친김에 두 딸과 밤 산책을 나섰다.
아들은 주말에 학원을 가지 않기 위해 학원 끝나고 집에 와서도 숙제 삼매경이다.
양손으로 두 딸의 작은 손을 꼭 잡고 집 근처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자주 하는 산책이 아니어서일까,
딸들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꽃이 폈다.
이래서 딸 바보가 되는가 보다.
딸들이 더 크기 전에 이 시간들을 마음껏 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