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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 the 하트히터 Apr 16. 2020

카타르시스의 함정

feat. 분노에 대처하는 자세

카타르시스의 함정


출처 : 네이버 영화 '조커' 포토


최근에 영화 '조커'를 다시 보게 되었다. 두 번째 보는 데도 여전히 강한 인상을 주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조커의 계단 댄스 씬이다. 동료를 죽이고 밖으로 나와 계단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주인공 아서가 조커로 각성하는 모습을 극대화해서 보여다. 분노를 표출 한 뒤 마치 해방감을 느끼는 듯 춤을 추는 조커의 모습에서 나 또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내 안의 분노까지도 모두 풀리는 느낌이었다. 이렇듯 우리는 흔히 분노할 경우에 그 감정을 밖으로 표출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쌓아두면 병이 난다고 말이다. 그런데 과연 분노는 표출하면 사그라지는 것일까?

2002년 아이오와 주립 대학의 심리학자 '브래드 부시먼'은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그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낙태에 반대하는 짧은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그들의 글을 다른 참가자에게 보여주고 평가를 받겠다고 이야기했다. 평가는 극단적이었다. “내가 읽은 글 중 최악이다”와 같은 심한 말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의도적으로 참가자들을 분노의 상태로 몰아넣은 다음 참가자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었다.

첫 번째 집단에게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다. 두 번째 집단에게는 모욕을 한 사람의 사진과 권투 글러브를 건네준 후 샌드백이 모욕적인 평가를 내린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힘껏 치라고 시다. 세 번째 집단에게도 역시 권투 글러브를 건네주었지만 건강에 좋은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샌드백을 치도록 시켰다. 그 결과 샌드백을 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훨씬 더 분노를 많이 표출했다. 화가 풀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높은 공격성을 보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카타르시스의 함정'이다.


화가 날 때 압박감을 방출시키는 방법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다르지 않다.
불길에 영양을 공급할 뿐이다.

- <감정을 읽는 시간>, 288p




감정 사용 설명서



<감정을 읽는 시간>은 두려움, 고독, 혐오감, 행복, 사랑, 시기심, 복수심, 슬픔, 신뢰, 분노 등 10 가지 감정에 대해 소개하고 이러한 감정이 우리의 생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각종 연구자료와 이론을 통해 얘기한다. 감정이 우리의 생각보다 비합리적이지 않으며 감정을 잘 이해하면 보다 주체적으로 감정을 대할 수 있고 더욱 지혜로운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일종의 '감정 사용 설명서'라고 봐도 좋을 듯하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진화생물학자들에 따르면 그것이 인류에게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주변 세계에 신속하고 적절하게 반응하기 위해서는 감정이 필수이다. 또한 찰스 다윈의 말에 따르면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해석하는 능력이 뛰어 난 쪽이 생존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남의 감정을 잘 읽는 사람은 동료의 의도를 예상하고 그에 맞게 반응했던 것이다. 결국 따지고 보면 모든 인간의 결정은 감정의 결정인 셈이다. 이성은 기껏해야 자료를 모으고 찬반을 고민하고 제안을 해주는 조언가에 불과하다.


인간의 뇌는 매 순간 모든 결정의 찬반을 합리적으로 고민하기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다.
우리는 쉴 새 없이 결정을 내려야 한다.

- <감정을 읽는 시간>, 37p




분노에 대처하는 자세



우리는 사랑, 행복 등 긍정적인 감정의 표현은 인간관계와 우리의 삶을 좀 더 만족스럽게 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 표출하자니 관계가 망가지거나 이미지가 안 좋아질 것 같고, 억압하자니 내가 미칠 것 같다. 표출과 억압 사이의 딜레마인 것이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부정적인 감정일수록 더더욱 경멸하거나 억눌러서는 안 된다고 한다. 부정적인 감정 역시 삶이라는 망망대해에서 길을 안내하는 중요한 신호등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알려주어 생존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준다.

분노를 다루는 최선의 전략은 바로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방법에서부터 대화와 목욕, 음악 듣기, 독백 등 다양한 방법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는데, 아침마다 몇 분 동안 다정한 표정의 얼굴을 떠올리며 부정적인 생각을 차단하는 것이다. 사랑이나 공감을 강화시키는 명상법들도 비슷한 효과를 낸다. 티베트의 승려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뇌의 신경생리학적 변화까지 확인되었다. 긍정적 감정은 악기처럼 학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분노는 전략적으로 이용할 경우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다른 감정과 달리 분노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공동의 목표'를 향해 협력하도록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테러의 위협에 저항하고, 더 나은 노동조건을 위해 투쟁하고, 핵발전소나 자연을 파괴하려는 세력에 대항하도록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다. 결국 분노를 어떻게 표현하는지가 중요한 문제라 하겠다. 폭력적인 행동으로 표현할지 아니면 엄청난 에너지의 원천으로 삼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조커가 분노를 표출하는 현명한 방법을 알고 명상이라도 했더라면 '분노를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같은 책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감정을 잘 이해하고 현명하게 대처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은 일이다.
나 또한 계속된 스스로에 대한 분노로 결국 병이 생겼고, 지금도 가끔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으로 인해 괴로울 때가 있다. 다행인 것은 치료를 받고 회복을 위한 많은 장치들을 통해 이전과는 조금씩 다른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그리고 나의 감정을 정확히 바라보고 잘 이해하려는 노력을 통해 지금보다 충분히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다.


감정은 우리가 불행을 향해 달려가지 않도록 막아주고 우리를 공감할 줄 아는 존재로 만들어주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감정을 이해하는 일은 곧 자아의 핵심에 도달하는 일이다.

- <감정을 읽는 시간>, 14p




* 참고 : <감정을 읽는 시간>, 클라우스페터 지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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