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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 the 하트히터 Jun 23. 2020

달리기가 내게 준 선물

feat. 습관을 만드는 방법

전부 최악이다


전부 최악이었다. 내 삶도 일도, 그 모든 것이... 2015년의 끝자락 처음 병을 진단받던 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처럼 긍정적이고 건강한 사람이 공황장애와 우울증이라니!!! 현실 부정으로 시작된 보잘것없는 내 자존심과의 싸움은 어느덧 나약한 나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져 갔고, 나는 나를 끊임없이 바닥으로 몰아갔다. 그렇게 무의미한 싸움과 방치로 수년의 시간이 흘렀고 그러는 사이 나는 점점 증상과 일상을 구분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 8p





이것은 내 이야기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마치 내 일기장을 훔쳐보기라도 한 듯 한 내용으로 인해 그 감동과 위안, 그리고 몰입이 남달랐던 듯하다. 고질적인 정신 질환과 이혼이라는 사건을 겪으며 평생을 눈물과 고통 속에 보낸 영국의 저널리스트 '벨라 마키'가 달리기를 통해 정신 질환(우울증, 공황장애, 불안 등)을 극복해내는 스토리가 담겨 있는 에세이이다.


특히, 이 책이 가진 장점이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속 시원한 저자의 말투다. 그 덕에 재미있게 읽힐 뿐만 아니라 거침없이 내뱉는 글을 읽다 보면 속이 다 후련해진다. 두 번째는 저자 자신의 경험뿐 아니라 방대한 참고 자료를 통해 달리기와 정신 건강의 상관관계, 그리고 우리가 정신 질환에 대해 가진 잘못된 인식을 바로 잡게 해 준다. 또한 실제 우리가 흔히 앓게 되는 정신 질환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려줌으로써 마치 한 권의 건강서적을 보는 느낌이다. 마지막으로는 솔직 담백하고 때로는 적나한 정신 질환의 묘사 및 극복과정이 나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어느 자기 계발 서적 이상의 큰 감동과 깨달음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걸 1타 3피라 해야 하나... 어쨌든 다시 내 이야기로.





나는 살기 위해 달렸다


나는 살기 위해 달리기를 시작했다. 꾸준한 치료와 상담 덕에 건강상태가 조금은 나아지기 시작했지만 그간 망가진 내 몸을 약과 상담에만 의지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내 사명을 위해 좀 더 빠르게 낫고 싶었다. 그런데 처음 운동장에 나가 뛰게 된 날, 5분 정도 달리고 나서 바로 포기해 버렸다. 솔직히 충격이었다(아.. 도대체 그동안 뭔 짓을 하고 산거야...). 왕년에 잘 나가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은 10년 전만 해도 꾸준히 나가던 10km 달리기 대회에서도 늘 40분 대 기록으로 완주했었고 운동도 곧 잘하는 나였기에 아무리 세월이 지났다 한들 5분이라는 기록은 나 자신에게 실망하기에 딱 좋았던 것이다. 게다가 덩달아 아픈 무릎은 며칠씩 뛰지 않게 만들 이유로 충분했다(20대의 관절을 돌려다오~). 하지만(!!!) 달려야 했다. 또 멍하니 누워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나를 계속 달리게 한 것들


지금이야 달리기가 좋은 습관으로 자리 잡아 내 삶의 많은 부분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지만 시작은 당연히 쉽지 않았다. 치료를 받으며 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권유받고 또 나 스스로도 운동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한들, 마음처럼 꾸준히 의욕적으로 뛰게 되지는 않는다. 더군다나 오랜 기간 우울증으로 무기력이 일상이 되어버린 나에게는 말이다. 그래서 달리기를 꾸준히 지속할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은 바로 '환경설정'이었다(배운 건 이럴 때 써먹어야 하는 것).

1. 달리는 목적(사명)​
이것만큼 내가 뛰어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말해주는 게 있을까? 내가 달리기를 시작한 모든 것의 디폴트 값이다. 나는 정말 성공하고 싶다(개인적 성공). 경제적 자유와 시간의 자유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누리며 살고 싶다(한 번뿐인 인생을 합리화와 포기로 살고 싶지는 않다). 더불어 누군가의 비전이며 증거가 되고 싶다. 개인적 성공을 넘어 함께하는 나의 팀원들과 사랑하는 가족들 또한 성공이라는 열매를 함께 맛보게 하고 싶다. 누군가와 함께 성취하고 성공하는 일이 나한테는 가장 큰 즐거움과 보람을 느끼는 일이기 때문이다(살면서 이렇게 즐겁고 보람 있는 경험은 없었다). 결론은 '이기적 이타주의자'이고 그 시작은 내가 온전해야 한다.

2. 1+1 전략(유튜브와 달리기의 결합)​
두 번째는 무거운 내 몸뚱이를 일으켜 세울 장치, 바로 유튜브 듣기와 달리기의 결합이었다(유료 결제는 화면을 꺼도 재생이 돼서 굳이 화면을 안 봐도 된다). 이 당시 체인지 그라운드의 동기부여 영상에 푹 빠져지냈는데 이게 정신적 고양감을 올리는 데는 좋았지만 각 잡고 보자니 시간 흘러가는 게 한도 끝도 없고, 듣기는 너무 듣고 싶고, 그래서 달리기 하는 시간에만(!!!) 유튜브를 듣기로 정했다. 그러자 그 당시에는 지루하고 힘들었던 달리기 시간이 훨씬 수월해졌다. 어릴 적 일요일 아침이면 늦잠도 안 자고 일찍 일어나 본방 사수했던 '디즈니 만화동산'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3. 어플 활용(체계적으로 조금씩, 작은 성취의 반복)​
과거에 잘 뛰었든 말든 그건 옛날 얘기고 자존심 꾹 내려놓고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생초보에게는 반드시 코치가 필요하다. 그래야 피드백도 할 수 있고 지속적으로 해나갈 수 있다. 혼자 하면 금방 지친다. 그래서 활용한 것이 달리기 전용 어플이었다. 초보 8주 프로그램을 따라가면서 3분, 5분, 10분... 그렇게 매일 뛰는 시간을 늘려갔고 올바른 자세를 배워나갔다(이어폰으로 들리는 코치의 격려와 칭찬의 음성이 그렇게 큰 힘이 될 줄 몰랐다. 다만 그 당시에는 업그레이드가 안되어 여성 음성 지원이 안됐다는 게 좀 아쉬웠...). 어플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장점은 '작은 성취의 반복'이 '자신감 상승'이라는 선순환으로 이어졌고 결국 달리기가 '재미있어졌다'는 것이다.(어플이 아니더라도 동호회나 커뮤니티를 통해 혼자 뛰지 말고 코치의 도움을 꼭 받는 걸 추천)

4. SNS에 올리기(책임감)​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부족했다. 그래서 내가 하나하나 달성해나가는 과정이나 모습을 나의 팀이 있는 SNS나 인스타 등에 포스팅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공표였다. 누가 뭐라 할 건 아니지만 나 스스로 시작한 책임감과 약속의 표시 같은 것이었다. 신기한 건 그러는 사이 누군가도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 모습에 또다시 동기부여를 받았고 더 책임감 있게 흔적(?)을 지속적으로 남겨야 했다.

5. 인지부조화의 원리(그냥 하기)​
모든 게 완벽할 줄 알았지? No No~~~
그래도 늘어지는 날이 오면 어떻게든 꾹 참고 그냥 나갔다. 왜냐면 달리지 않으면 그 날 하루가 끝날 때쯤 덮쳐오는 죄책감 비슷한 감정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결국 안 뛰면 반드시 후회할 것을 알기에 죽상을 하고 나가기도 했지만, 합법적 마약인 '러너스 하이'도 한몫을 했다. 달리기를 한다고 꼭 러너스 하이를 느끼는 것은 아니지만 달리기가 주는 정신적, 육체적 고양감은 달리기를 지속하게 하는 하나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 번도 안 뛰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뛴 사람은 없다'는 말도 있는 듯하다.





달리기가 내게 준 선물


1. 건강(질환의 호전, 체중 감량, 기초체력)​
달리기를 시작하고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공황발작의 횟수가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이다(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하지만 방심은 금물!!!). 치료를 받으며 왜 그러한 증상이 일어나는지와 대처법을 배우더라도 막상 발작이 일어나면 매번 정말 적응이 안됐다. 참을 수 없는 통증과 극도의 공포감, 그보다 더한 건 발작이 끝난 후 찾아오는 비참함이다... 그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모른다

그다음은 11kg 체중 감량!!
와~~~~!!! 이건 의도한 게 아니다!!!!
애초 다이어트를 목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 었지만 정말 쾌거이다. 업무상 그리고 핑계 조금 보태서 인간관계한다고 365일 중 370일은 술을 마시던 나는, 내 몸무게 역대 기록인 83kg를 달성 중이었다. 하지만 9개월쯤 달렸을 때 총 11kg의 살이 빠졌고 그걸 지금도 유지하고 있다(아침에 샤워할 때 양심상 가~~~~~끔 놀란다. 다시 찾은 미모 덕분이랄까. 핫~).

마지막으로 기초체력 또한 좋아진 덕에 예전보다는 좀 더 하루의 일과를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그리고 축 늘어져있는 몸과 더불어 늘 찌뿌둥하고 무거웠던 머리가 부정적 생각이나 편협한 감정들로부터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진부한 말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2. 공감 능력​
정확한 출처는 기억이 나지 않는데 '운디드 힐러(상처 입은 치유자)' 란 말이 있다. 자신의 상처를 극복함으로써 상처 받은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 또한 우울증 환자나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마치 인생의 낙오자나 나약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살아왔다. 하지만 나 자신이 직접 겪어보니 비로소(!!!)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하다. '고통에는 경중이 없다' 고 한다. 그 사람 본인이 겪는 고통이 절대적이며 가장 큰 것이다. 우울증이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감사한 부분은 그 바닥을 경험하고 나서야 내가 조금은 철이 든 것 같다. 더 나아가 꼭 어떠한 병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을 대할 때 그 사람이 처한 상황(맥락)에 대해 생각하자는 나만의 새로운 기준도 생겼다. 세상 사람 누구나 사연이 있는 것이니까.

3. 내 삶의 통제감(자존감 회복)​
끝으로 가장 큰 부분인데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 내 삶의 전반적인 상태가 좋아졌다. 달리기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란 것쯤은 나도 안다. 하지만 우울증으로 인한 건강악화와 무기력으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인생 바닥까지 내려갔던 내 삶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달리기 하나 가지고 무슨 삶이 크게 변화된 것처럼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이건 사실이다. 작은 성취의 반복이 주는 만족감과 자신감 상승은 자존감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 그리고 자존감 회복은 또다시 새로운 시도와 새로운 세계로의 열린 마음을 갖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내가 지금까지 달리기를 계속해오고 있고 좋은 습관들을 만듦으로써 무너졌던 내 일상이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그 증거다!!!





나는 계속 달릴 것이다


- 262p

치료와 더불어 달리기를 시작한 지 어느덧 24개월이 지났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느림보 같은 시간이다. 사람이 참 간사한 게 분명 이전보다 더 나아지고 있는데도 그동안의 흐른 시간은 생각하지 않고 더 빠르게 나아지지 못함에 의심하고 조바심을 낸다. 하지만 하나만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그 여정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그것은 장거리 여행이고 때로는 진척이 느릴 수 있다는 것을. 물론 그 길에서 실망할 때도 있을 테지만 그럴 때는 자신이 얼마나 멀리 왔는지 돌아보면 된다. 그 길을 만드는 건 나 자신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염려 없이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나의 조바심을 다독여 준 고마운 책.
나는 계속 달릴 것이다.

진심으로 감사해요~벨라 마키~~!!^^






* 참고 : <시작하기엔 너무 늦지 않았을까?>, 벨라 마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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