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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 the 하트히터 Aug 23. 2020

기술은 감정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feat. 경외감에 대하여

뭐하러 사진을 찍어?


예전에 한참 여행을 다닐 때 일이다. 인도 로컬 버스의 지붕에 올라 풍경을 보며 연신 카메라를 찍어대는 나에게 한 사두(힌두교 성자)가 말했다.
"뭐하러 사진을 찍어? 어차피 너의 마음속에 다 기억될 거야. 풍경 자체를 보고 즐겨!"
지금 생각해도 당시 그 사두의 말은 정말 멋진 말이라고 생각한다. 먼 훗날 지나간 현재를 기억하려고 애쓰기 위해 정작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뭔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져서 사진 찍기를 관두고 그저 풍경을 바라만 보았다. 신기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그 감동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는 것은  사진이 아니라 그때 직접 보았던 기억이라는 사실이다.


카메라가 아무리 좋아도 뭔가 늘 아쉽다

요즘은 날이 더워 주로 저녁에 달리기를 한다. 한참 달리다 보면 정말 멋진 저녁노을을 볼 때가 있는데 이때는 저절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그리고 그 멋진 풍경을 놓칠 새라 스마트폰을 꺼내어 연신 사진을 찍으며 만족스러워한다. 그러다 참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직접 보는 풍경에 감탄하는 것일까, 그 풍경을 최대한 구현한 사진에 감탄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엄청나게 좋아진 스마트폰 카메라의 기능에 감탄하는 것일까?
문득 예전 인도에서 만난 사두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뭐하러 사진을 찍어?
어차피 너의 마음속에 다 기억될 거야.
풍경 자체를 보고 즐겨!






기술 발전으로 살펴본 감정의 진화


<테크 심리학>“우리의 감정과 자아의식이 디지털 기술로 급격하게 달라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 감정적 일상은 지난 200년간 급격히 변해왔고, 그 변화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아도취, 고독, 지루함, 산만함, 경외감, 분노와 같은 감정이 과거와 오늘날 어떻게 바뀌었는지 역사적 흐름을 따라 살펴본다.


특히, 흥미로웠던 부분은 '경외감' 파트였다. '이카루스(Icarus)'는 밀랍과 깃털로 만든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 수 있게 되자 더 높이 날고 싶어 졌고 결국 태양에 가까워지자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서 추락하여 죽음을 맞이한다. 이 이야기는 미지의 서계에 대한 인간의 동경심과 한계를 보여주는 그리스 신화이다. 이렇듯 과거의 서구 사람들은 인간이 침범해서는 안 되는 한계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느끼는 경외감의 대상은 전지전능한 신이나 위대한 자연뿐이었고, 인간의 능력을 증대시키려는 열망은 신적 권위에 대한 건방지고 오만하며 도를 넘은 무례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19세기에 들어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여전히 초자연적인 힘을 믿기는 했지만, 자신들이 만들어낸 기술이 신을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힘을 가지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기 시작했다. 20세기에는 새로운 기계들이 발명될 때마다 그것은 그저 개인의 천재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기술은 연구와 과학의 산물, 즉 신이 내린 영감이 아니라 인간의 재능으로 만든 작품이 된 것이다.


'우리 자신에 대한 경탄'이야말로 21세기에 등장한 새로운 경외감이다.

- <테크 심리학>, 406p






인간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


고도로 발전한 기술이 우리에게 무제한적 자유와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술이라는 도구의 감정적, 사회적 함의를 자각하지 못하면 오히려 인간이 도구에 휘둘릴 수 있다.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기술을 얻었다고 해서 우리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최신 기술을 인간의 정체성에 가장 부합하게 또 우리가 만들 세상에 가장 어울리게 제한할 수 있는지는 바로 인간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나는 여전히 멋진 풍경을 보면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예전처럼 스마트폰에 담길 사진에 공을 들이기보다는 실제의 감탄스러운 풍경 자체를 바라보는데 더 신경을 쓰기로 했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한계를 느끼면서도 무언가 모를 벅차오름 또한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계와 가능성의 경계를 깨닫고 그 안에서 내가 해야 할 것을 선택하고 해 나갈 수 있는 배움을 얻는 것, 그것은 스마트폰이 아니라 풍경을 직접 바라보는데서 오는 감정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구상하고 선택하는 능력과 책임으로 인해 독특한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다.

- <테크 심리학>, 524p





* 참고 : <테크 심리학>, 루크 페르난데스, 수전 J. 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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